“北 비핵화 현실적 불가… 韓 핵역량 키워 대응해야”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4일 미국 워싱턴DC 인근 버지니아주 미들버그 샐러맨더 리조트에서 열린 ‘제3회 트랜스 퍼시픽 다이얼로그’ 회의에 참석해 개막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이날 회의에는 김성환 전 외교통상부 장관, 척 헤이글 전 미국 국방장관, 조현동 주미 한국대사, 모리모토 사토시 전 일본 국방상 등 한·미·일 3국 전·현직 관료와 학계 전문가들이 대거 참석했다. 최종현학술원 제공

■ 최종현학술원, 美서‘TPD 회의’

조지프 윤 前 美 대북대표 주장
협상통한 북핵폐기 가능성 실종
美 전술핵재배치·3자 핵협의 등
핵 vs 핵 실질적 방안 제시‘주목’

미들버그=이미숙 전임기자(논설위원) musel@munhwa.com

한·미 양국은 북한 비핵화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단계로 진입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한국의 핵 역량을 키우는 쪽으로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이 최종현학술원(이사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주최 ‘제3회 트랜스 퍼시픽 다이얼로그’(TPD)에서 제기됐다. 1994년 제네바합의 이후 북핵 해법이었던 협상을 통한 핵 폐기 가능성이 사실상 사라진 만큼 현실적 위협인 북핵에 대응하기 위해 대안적 해법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조지프 윤 전 미국 대북정책특별대표는 4일(현지시간) 워싱턴DC 인근 버지니아주 미들버그 샐러맨더 리조트에서 열린 TPD 회의에서 “우크라이나 전쟁 후 러시아와 북한, 중국의 결속이 강화되는 상황에서 북한 비핵화는 더 이상 유용한 해법이 아니다”라면서 “한국은 북한의 핵 협박에 대응하기 위한 실질적 해법을 찾아야 하고 미국도 협상을 통한 북핵 폐기론에서 벗어나 현실적 북핵 대응법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북핵 폐기가 현실적으로 어려워진 상황에서 한국은 자체 핵 역량을 통해 북핵을 해결하는 새로운 접근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중 신냉전 구도에 북·중·러 밀착 현상까지 나타나면서 북핵 폐기는 어려워진 만큼 한국은 북한의 핵 협박에 대응하기 위한 새로운 방안을 마련해야 하고 미국도 협상을 통한 북핵 폐기론에서 벗어나 북핵에 맞서는 현실적 방안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주장인 것이다. 윤 전 대표는 한국의 핵 역량 확보 방안으로 미국의 전술핵 재배치를 비롯해 한·미·일 3자 차원의 핵 협의 그룹 구성을 제안했다. 한·미·일이 북·중·러의 핵 위협에 핵으로 대응하는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는 제언이다.

윤 전 대표의 제안은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김성환 전 외교통상부 장관은 이날 기조연설에서 “중·러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 논의를 무력화한 상황에 미국에서 북핵 대응법으로 한국의 핵 역량 확보 필요성이 공식 제기된 것은 의미심장하다”며 “북핵에 대한 대응력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한·일 협력은 시급히 격상돼야 한다”고 말했다.

5일 열린 북핵 위기 세션에 참여한 한·미·일 전문가들도 “협상을 통한 북핵 해결의 문은 닫혔다” “1994년 제네바합의 이후 30년간 진행된 북핵 협상은 실패했다”는 진단을 내렸다. 다만,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선 의견이 갈렸다. 글로벌 비확산체제 유지 쪽에 비중을 둔 미국 측 전문가들은 한·미 정상이 워싱턴선언에서 확인한 확장억제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반면, 한국 측 인사들은 워싱턴선언이 현 단계에서는 유용하지만, 북핵 위기가 더 심각해지거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내년 미국 대선에서 승리한 뒤 워싱턴선언 등을 준수하지 않을 경우 새로운 모색을 할 수밖에 없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박인국 최종현학술원 원장이 5일 제안한 우라늄 농축 협력을 위한 한·미·일 컨소시엄 구축 필요성도 주목을 받았다. 미국 측 인사들은 “세계의 신규 원전 건설 시장을 중국과 러시아가 대부분 장악했고, 원전 연료도 중·러가 50% 이상 생산하는 것은 문제”라면서 “한·미·일이 원전 연료 공급망 안전성 확보를 위해 나서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또 박 원장이 제기한 원자력 추진 잠수함 등 함정 건조 관련 한·미 컨소시엄 구상에 대해 미국 측 인사들은 “호혜적으로 검토할 만하다”는 반응을 보여 주목된다.

한·미·일 전·현직 관료 및 학계·경제계 중진 인사들의 3자 회의체인 TPD 회의는 일부 세션을 제외하고 비공개로 진행되며 모든 토론 및 대화 내용도 채텀 하우스 룰에 따라 익명으로 전달할 수 있다. 최종현학술원은 6일 회의 종료 후 한·미 양국에 대한 정책 제언을 발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