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크로’ 돌려 수십배 폭리… 예매 못한 찐팬, 울며 겨자먹기 구매[Who, What, W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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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hat - 팬심 울리는 ‘암표’

매크로 유포되며 암표상도 늘어
팬클럽 침투 ‘선예매’까지 노려
암표신고 2년새 10배 넘게 증가
허위 매물로 사기행각도 빈번해

팬들 “사지 말자” 한목소리에도
관람 간절한 팬심에 근절 한계
온라인 암표 처벌 규정도 미비

할머니를 위해 지난해 임영웅 콘서트 티케팅에 도전한 최모(20) 씨는 데스크톱, 노트북, 스마트폰 등 기기 3대를 동원해 정시에 예매하기를 눌렀으나 대기번호 10만 번대를 받으며 실패했다. 최 씨는 이후 암표가 번개장터, 당근마켓, 중고나라 등 온라인 거래 플랫폼에서 수백만 원에 거래되는 것을 보고 분노와 좌절감을 느꼈다.

아이유 팬클럽 회원인 A(29) 씨의 상황도 다르지 않았다. 팬클럽 회원에게 선예매 혜택이 주어지지만 암표상들이 팬클럽에도 침투하며 선예매에 실패했고 수 배 가격이 오른 암표 판매글이 올라오는 것을 무기력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지난해 아이유의 팬클럽 규모가 7만4600명을 돌파하며 1만5000석 규모의 팬콘서트 예약 선예매도 장담할 수 없게 된 셈이다. 이처럼 ‘찐팬’들은 예매에 실패하며 K-팝·공연계가 암표로 멍들고 있다.

◇ 암표, 왜 급증했나?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온라인 암표 신고 건수는 △2020년 359건 △2021년 785건 △2022년 4224건으로 급증하고 있다. 또한 한국음악레이블산업협회가 지난해 한국리서치를 통해 공연 티켓 예매를 해본 전국 남녀 572명을 설문 조사한 결과, 19∼29세 32.8%가 “암표 구매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암표가 급증하는 이유는 자동으로 특정 명령을 반복 입력해 짧은 시간 내에 대량의 정보를 송신할 수 있는 ‘매크로 프로그램’ 때문이다. 유명 가수 공연의 암표는 프리미엄이 형성돼 원가보다 수 배∼수십 배 비싸게 판매할 수 있어 예전부터 많이 거래됐다. 여기에 매크로 프로그램 보급화로 암표 판매에 뛰어드는 리셀(재판매)업자들이 늘어나기 시작하며 암표 거래가 더 활발해진 것이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아이유와 임영웅은 암표로 몸살을 앓고 있는 대표적인 연예인이다. 팬클럽 영구 퇴출, 부정 예매 취소 등 조치를 취하고 있지만 암표의 수가 너무 많아 어려움을 겪고 있다. EDAM엔터테인먼트·물고기뮤직 제공

◇ 공연·숙박권·경기 티켓… 업종 가리지 않고 기승 부리는 암표

암표로 인해 진성 팬들이 예매에 실패하고 콘서트에 가지 못하는 일이 빈번해지고 있다. 이들 중 원래 티켓 값보다 웃돈을 주고 암표를 구입해 공연장을 찾는 사례도 잦아지는 추세다. 특히 아이유·임영웅 등 인기 가수들의 콘서트 암표 값은 원가의 수십 배까지 폭등해 엄청난 차익을 노릴 수 있다.

이런 상황을 악용, 표를 확보하지 못한 상황 속에서 허위 매물을 내놓는 사기 행각도 늘고 있다. 최근 당근마켓과 중고나라 등 앱을 통해 임영웅 콘서트 티켓을 판매한다고 속여 총 5억9544만 원의 범죄 수익을 챙긴 30대 김모 씨에게 징역 6년이 선고됐다. 김 씨는 판매대금을 보내주면 콘서트 티켓을 양도하겠다는 방식으로 130여 차례에 걸쳐 피해자들을 속였다. 지난해 말 SBS ‘가요대전’ 암표를 판매한다는 허위 글을 올리고 피해자 230여 명으로부터 총 7200만 원을 빼앗은 20대 남성이 입건돼 지난 19일 검찰에 송치되기도 했다.

암표 문제는 공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최근 더 현대 크리스마스 팝업스토어 사전 예약권이 오픈과 동시에 매진됐다. 예약권은 무료지만 크리스마스 이브, 당일 티켓은 10만 원이 넘는 가격에 거래됐다. 이 외에도 유명 호텔 숙박권, 스포츠 경기티켓을 원가보다 훨씬 비싼 가격에 사고파는 사례가 늘고 있다.

◇ 암표 거래, 국내 처벌 수위는?

국내 암표 거래 처벌 수위는 약하다. 현재 암표 매매는 경범죄처벌법 3조에 해당돼 적발되면 20만 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의 형으로 처벌한다. 오는 3월 22일부터 시행되는 공연법은 매크로를 이용한 입장권 등의 부정판매를 전면 금지하며 이를 위반할 때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그러나 온라인 암표 처벌 규정은 빠져있다. 즉 현장에서 거래되는 암표에 한해 처벌하기 때문에 “실효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 해외 시장, 암표 거래에 어떻게 대처하나?

해외에서도 테일러 스위프트와 같은 가수의 공연, 슈퍼볼 같은 인기 경기를 둘러싸고 천문학적인 암표 값이 형성된다. 슈퍼볼의 티켓 값은 700∼1800달러 정도지만 암표 값은 8000∼1만 달러에 형성된다. 미국은 대부분 주에서 티켓 판매를 허용하지만 지난 2016년 온라인티켓거래개선법(Better Online Ticket Sales Act)을 제정해 매크로 프로그램을 사용할 시 최대 1만6000달러 벌금형에 처한다. 대만에서 암표를 팔다가 걸리면 티켓 값의 최대 50배 벌금을 내고, 매크로 프로그램을 사용하다 적발되면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만 대만달러(1억2810만 원) 이하 벌금형에 처해진다.

◇ 암표 근절 해법은?

암표를 궁극적으로 없앨 수 있을까? 업계에선 “어려울 것”이라는 의견이 주류다. 매크로 프로그램을 단속한다고 해도 오랜 기간 형성된 암표 시장을 근절하긴 어렵다고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또한 ‘사지 말자’고 팬들끼리 한목소리를 내려고 해도, 결국 웃돈을 주고 콘서트에 가고 싶어하는 간절한 팬들이 많기 때문이다. 기획사들이 적극적으로 신분증 확인, 현장 거래 적발 등을 통해 암표 방지에 나서고 있지만 암표업체들도 ‘아옮(아이디 옮기기)’ ‘대리 티케팅’ 등 편법을 쓰며 감시망을 빠져나가고 있다.

그럼에도 근절을 위한 캠페인은 꾸준히 진행되고 있으며 최근엔 아티스트들도 전면에 나서 암표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처벌 강화와 인식 개선이 병행돼야 한다는 것.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근본적으로 근절하기 위해선 암표에 대해 대중들이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분위기가 갖춰져야 한다”면서 “결국 웃돈을 주고 구매할 의향을 가진 수요가 있기 때문에 불법적인 매매 시장이 형성되는 것이다. 대중들 사이에서 ‘암표는 절대 안 된다’는 생각이 모여야 한다”고 말했다.

유민우 기자 yoom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