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수기’ 이사회부터 쇄신… 글로벌 기준 맞춘다

■ 금융권 ‘모범관행’ 요구 왜

8개 은행 57명중 39명 임기만료
학계편중·경영진 견제 미흡 지적
독립·전문성 가진 ‘롤모델’ 제시
민간기업까지 장기적 확산 의도

일각 “관치의 반복에 불과” 비판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중요한 원인으로 기업의 후진적 지배구조와 ‘거수기’로 전락한 이사회 문제가 수면 위로 부상하면서 이사회 운영방식 선진화에 대한 요구도 높아지고 있다.

28일 금융권에서는 지난해 ‘은행 지주·은행의 지배구조 모범관행(BEST PRACTICE)’ 수립을 통해 이사회의 다양성과 독립성·전문성을 확보함과 동시에 학계 출신에 편중된 기형적인 사외이사 인적 구성 등을 쇄신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금융당국이 금융회사 이사회 개편 작업에 속도를 내려는 것은 그동안 사실상 ‘거수기’ 역할에 그친 이사회가 각종 금융 사고를 예방하지 못했다는 문제 인식에서 비롯됐다. 지난해 상반기 기준 5대 금융 지주가 이사회에서 다룬 105건의 안건 중 100%가 ‘찬성’ 의결됐다. 이 때문에 최근 홍콩 H지수(항셍중국기업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주가연계증권(ELS) 손실 사태, 대규모 횡령 등 금융권의 각종 사건·사고가 이어지며 이사회가 제 기능을 못 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거수기 이사회’의 원인이 인적 구성에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국내 은행권 사외이사 직군은 학계가 37%, 금융계 22%, 관료 12%, 비금융계 11%다. 이처럼 학계에 편중된 구성은 독립성과 전문성, 글로벌 스탠더드 등에 맞지 않다는 게 금융당국의 시각이다. 이에 따라 이사회 구조 개편을 통해 글로벌 스탠더드와 디지털 전환,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에 맞는 다양한 업종에 종사하는 인사들이 이사회에 들어와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다만, 이사회 인적 쇄신과 관련해선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현 정부가 ‘단기적’으로 유도하는 인적 쇄신이 결국은 주인 없는 회사들의 사외이사 자리에 정권의 입맛에 맞는 사람을 심기 위한 꼼수이자 관치의 반복이 될 수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주인 없는 회사의 이사회 독립성을 확보하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라며 “어떤 제도를 만들어도 항상 정권의 영향에서 벗어나긴 어렵다”고 말했다. 장기적으로는 상법 개정 등 법무부·기획재정부·금융위원회 등이 제도 개선을 통해 이사회 등 지배구조 선진화 모범을 만들고, 관련 내용이 공기업·민영화 기업뿐 아니라 민간기업에도 영향을 미칠 때 기업 밸류업 효과가 극대화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금융산업실장은 “기업 밸류업을 위해서는 자기자본이익률(ROE) 등 공시에 더해 지배구조 개선에 대해 진단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박정경·신병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