野 퍼주기 법안과 수권 역행[뉴스와 시각]

박정민 경제부 차장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에 소속된 야당의 A 의원은 서울시 공무원 출신이다. 그는 대한민국에서도 손꼽히는 교통 전문가로 서울시청 내에서도 직원들의 신망을 받던 인물이다. 바람 잘 날 없는 서울 대중교통을 책임지는 자리를 두 번이나 지내며, 행정력 또한 인정받았다. 또 다른 농해수위 소속 B 의원은 문재인 정부에서 청와대 농해수비서관을 지냈다. 지난 정부 때 우리나라 농정을 책임지는 자리에서 여러 농업·농촌 현안을 다룬 경험의 소유자다. 이들은 모두 지난 4월 총선에 출마해 호남 지역에서 승리했다. 승리 직후 그들은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양곡법)과 함께 농수산물유통및가격안정법(농안법) 개정안을 국회에 직회부시키는 데 앞장섰다.

시정과 국정을 책임진 경험이 있는 두 야당 의원이 자당의 양곡법과 농안법에 대해 농민들을 위한 법이라고 주장하는 것을 보며 착잡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새 양곡법엔 양곡수급관리위원회를 설치해 위원회에 가격이 폭락한 쌀의 의무 매입을 판단하게 하는 내용이 담겼지만, 초과 생산되는 쌀을 의무적으로 격리하는 독소조항을 남겨놨다. 농안법에는 쌀을 포함한 전체 농산물의 시세가 기준가격 밑으로 형성될 경우 그 차액을 정부가 지급하는 내용의 최저가격보장제가 담겨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민생 법안이라며 28일 열릴 마지막 본회의를 겨냥해 직회부했지만, 민주당 내에서도 시행 가능성을 크게 보지 않는다. 대통령이 거부권 행사를 한 차례 더 하게 만들겠다는 의도로만 읽힌다.

농민을 위한 법안이란 명분을 앞세워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겠다는 민주당의 저의를 국민도 모르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행정 경험이 있는 의원들이 나서서 농업을, 국가 재정을 좀먹는 법안을 민생 법안이라며 외치는 것에 개탄한다. 총선 전 호남 지역구 경선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해 선명성을 드러내는 차원에서 이 법안들이 악용됐다는 게 정치권의 시각이다. 초과 생산된 쌀을 의무 매입하는 등에 연간 3조 원의 예산이 들어가는 것, 농산물 가격 하락 시 예산으로 차액을 보전하는 것은 농민을 위한 정책이 아니다. 그렇게 좋은 법이었다면 왜 지난 정부에서 추진하지 않았나? 경선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포퓰리즘 법안을 추진했다면 선거 이후엔 전체 국민을 위해 재고해야 한다. 국회의원은 지역구 유권자만이 아닌, 국민 전체를 위해 봉직해야 할 의무가 있다.

민주당이 수권 정당으로서 자격을 갖췄는지는 총선 이후 그들이 추진하는 정책을 통해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인플레이션 장기화로 국가 경제 전반이 어려운 상황에서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현금 살포 정책이나, 농산물 수급 시스템을 망가뜨릴 가격보전 정책이 민주당의 색깔을 담보하지 않는다. 시장경제 시스템을 공격하는 퍼주기 정책들을 내놔야 ‘진정한’ 민주당이 되는 것이 아니란 얘기다. 시장경제에 대한 이해가 뒷받침된, 국민 경제 전체에 부담을 주지 않을 정책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 시장경제 시스템 속에서 약자에 대한 보호, 국민 전체를 위한 합리적인 정책 발굴과 입법을 통해 민주당의 가치는 완성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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