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빠진 슈퍼히어로… ‘마블민국’은 옛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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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어로 영화의 쇠락… 이유는?

블랙팬서2·앤트맨3 저조한 성적
타노스·아이언맨 등 주요캐릭터
대거 퇴장 이후 인기 시들해져

세계관 커지며 높아진 진입장벽
무리하게 등장하는 새 캐릭터와
반복되는 스토리 패턴에 피로감

3∼4년 전만 해도 대한민국은 ‘마블민국’이었다. 영화에서 장난감까지 마블이란 상표만 붙으면 뭐든 잘 팔렸다. 코믹북 히어로 무비는 괴짜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전 세계가 열광하는 영화 장르였다. 그로부터 4년 후 마블 영화를 위시한 히어로 영화는 몰락했다. 특히 한국에서. 무엇이 그렇게 만들었을까. 이쯤 되면 변화하는 대중의 마음을 제대로 못 읽은 거장의 아집으로 폄하됐던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말이 새롭게 느껴진다. “히어로 영화는 ‘시네마’가 아닌 테마파크다.”

‘앤트맨과 와스프 : 퀀텀매니아’(이하 ‘앤트맨3’)의 한국에서의 흥행 실패는 충격적인 수준이다. 영화관 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6일 기준 박스오피스 6위다. 개봉한 지 20여 일이 지났다고는 하지만, 당초 경쟁작이 없다고 평가받았고 먼저 개봉한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건재한 점을 감안하면 머쓱한 상황. 가까스로 150만 관객을 넘겼지만, 예매율은 이미 1% 미만으로 떨어졌다. 마블시네마틱유니버스(MCU) 중 최악의 성적을 기록했던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174만 관객)과 비견될 정도의 참패다.

타노스의 죽음과 아이언맨 등 기존 영웅의 대거 퇴장 이후인 ‘페이즈4’부터 마블 슈퍼히어로 영화가 흔들렸다고는 하지만, 한국에서 유독 힘이 빠졌다. 앞서 개봉한 ‘블랙 팬서 : 와칸다 포에버’ 역시 210만 명을 가까스로 넘겼다. 전편인 ‘블랙 팬서’가 539만 명을 모았음을 감안하면 절반 넘게 줄어든 것이다.

마블 영화를 찾지 않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전 세계 흥행 순위 3위인 ‘어벤져스 : 엔드 게임’의 영광에 취해 10년에 걸쳐 이뤘던 서사를 단시간에 재현하려고 해서다. 촬영 기간이 긴 영화로는 한계가 있다 보니 디즈니+ 드라마까지 가세해 새로운 히어로 캐릭터를 채우고, 멀티버스(다중우주) 등 새로운 MCU 세계관을 관객에게 주입시켰다.

전체적 흐름에 집착하다 보니 개별 히어로 캐릭터 연출엔 소홀해 영웅들의 매력이 떨어졌다는 점도 문제다. ‘아이언맨’과 ‘캡틴 아메리카’가 피땀 흘려 일군 서사에 매력 있는 빌런 타노스를 등장시켜 ‘어벤져스 : 엔드 게임’에서 정점을 이룬 패턴을 급조하고 있지만, 정작 시리즈를 이끌 다음 ‘아이언맨’과 ‘캡틴 아메리카’가 보이지 않는다. 더구나 아이언맨은 한국에서 유독 인기가 높았다. 그가 등장한 마블 영화와, 등장하지 않은 마블 영화의 흥행 차이는 뚜렷하다.

‘앤트맨3’의 경우에도 향후 중심 빌런인 ‘캉’의 소개에 집중해 앤트맨은 들러리 역할에 그쳤다. ‘블랙 팬서 : 와칸다 포에버’에서 ‘아이언 하트’를 무리하게 등장시킨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허남웅 영화평론가는 “슈퍼히어로 영화는 누가 나오든 뭔가를 구하거나 파괴하는 이야기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며 “새로운 캐릭터가 나와도 이야기 패턴이 반복돼 피로감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디즈니+까지 가세하며 하나의 영화를 보려면 학습할 콘텐츠가 너무 많아 진입장벽이 높아졌다는 점도 문제다. 새로운 마블 영화 한 편을 온전히 이해하려면 드라마 1∼2편 사전학습은 기본이란 말이 나온다.

마블이 페이즈마다 제작 예정인 콘텐츠 전체의 개봉 일정을 공개하면서 일정에 쫓기는 주먹구구식 영화 만들기가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닥터 스트레인지 : 대혼돈의 멀티버스’의 경우 시나리오 집필 기간은 3주밖에 되지 않았고, 그마저도 영화와 관련 있는 디즈니+ 시리즈 ‘완다비전’의 내용에 따라 촬영 중에도 계속 결말을 수정해야 했다. 급기야 케빈 파이기 마블스튜디오 CCO는 공개 편수를 줄이고, 개봉일도 연기하겠다는 ‘퇴각 명령’을 내리기에 이르렀다. 허 평론가는 “페이즈4 이후 마블은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며 “‘이터널스’나 ‘샹치’ 등으로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려는 시도를 했지만, 이야기는 관성적이고 서양 중심적 시각에서 제3인종은 끼어든다는 인상을 준다”고 비판했다. 이제 마블의 슈퍼히어로 영화는 더 이상 힙(hip)하지 않은 건 아닐까. 이런 의심과 함께 자기 복제적 콘텐츠 양산으로 예전 서부극의 전철을 밟고 있다는 지적은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는 과거 “슈퍼 히어로물은 서부 영화 장르의 길을 따라가게 될 것”이라며 “서부극이 쇠락의 길을 걸었듯이 슈퍼히어로 무비도 서부극과 같은 방식으로 사라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서부극이 스페이스 오페라로 변형된 것처럼 기존의 히어로물도 유효기간 만료 전에 변신해야 할지 모른다.

이정우 기자 krusty@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