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일 기자의 인생풍경]무주서 느낀 ‘관계맺기’의 감동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여행은 ‘관계’다. 팬데믹의 긴 터널을 지나오면서 깨달았다. 낯선 공간에 대한 흥분과 새로운 볼거리, 소비의 즐거움과 맛있는 음식. 그게 여행의 전부는 아니다. 여행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건 사람과 지역과의 관계, 그리고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다. 여행이 금지됐던 팬데믹의 시간이 힘들었던 건, 많은 곳을 못 가봐서 그랬던 게 아니라 이런 관계 결핍 때문이 아니었을까. 팬데믹 시대의 비대면 여행이 이런 결핍을 채워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최근 지인 여럿과 전북 무주로 여행을 다녀왔다. 리무진 관광버스를 꽉 채웠으니 일행의 수가 적지 않았다. 앞장서야만 하는 입장이어서 혼자 목적지를 정하고, 동선을 짜고, 식사 메뉴를 정했다. 당일치기의 빡빡한 여행이라 일정이 한치도 어긋나지 않아야 했다. 모노레일을 타고 무주읍 진산인 향로봉 전망대에 올라서 사행(蛇行)하는 금강을 내려다봤고, 금강 변 숲길을 천천히 걸었다. 무주 와인으로 깜짝 와인파티도 했다. 돌아오는 길에는 족욕을 하며 피로를 풀었다. 대기도 깨끗하고 구름도 적당한, 더할 나위 없는 날이었다.

다들 만족스러워했지만 이들이 진짜 감동했던 건 여행 코스나 풍경이 아니었다. 무주 적상산 아래 근사한 카페에서 점심을 겸해 현지 주민이 진행하는 음식 체험을 했는데 그게 가장 반응이 좋았다. ‘블루베리 콩포트’ 만들기도 좋았지만, 정성껏 차린 팜파티 스타일의 정갈한 밥상은 가히 감동적이었다. 솜씨도 솜씨지만, 하나같이 정성을 보태지 않으면 불가능한 음식이었다.

이날 음식 체험에서 ‘음식을 통한 관계 맺기’의 가능성을 봤다. 밥상을 차린 현지 주민과 밥상을 받은 여행자는 금세 가까워졌다. 여행자들은 주민들의 정성이 고마웠고, 주민들은 주민들대로 음식을 알아봐 주고 레시피를 묻는 여행자들의 질문에 감격했다. 식당에서 손님이 레시피를 물었다면 아마 ‘귀찮다’며 손사래를 쳤으리라.

식사가 끝난 뒤 한 주민이 “이번 만남을 계기로 무주에 ‘믿을 구석’ 하나 생겼다고 생각해달라”고 했다. 돈 내고 잠자리와 식사를 사는 여행지가 아니라, 외갓집처럼 교유하자는 얘기였다. 그 말에서 진심이 묻어났다.

여행에서 돌아온 뒤에 몇몇이 가족과 함께 다시 무주를 여행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주민들로부터 환대를 받았음은 물론이다. 그동안 우리는 ‘함께 여행 간 일행끼리’ 교유하는 여행을 했다. 더 즐겁고 의미 있는 여행이, 현지 주민과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다. 여행은 ‘관계’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