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경광등 울리면 신고 요청’ 안내문 지난 2일 경기 성남시 한 공원 공영주차장의 비상벨을 눌러 보니 경광등이 켜지고 알람 소리가 울렸다. 안내문에는 ‘경광등이 울릴 경우 위험한 상황이 발생하였을 수 있으니 112로 신고해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어 경찰과 직접 연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박윤슬 기자
유명무실 '비상벨' - (上) 응답 없는 ‘소음벨’
으슥하고 오래된 공원·주차장
자동 신고기능 없는 벨 수두룩
신고망과 연계하려면 400만원
단순 비상벨은 3만원이면 설치
주민 “되레 불안, 배신당한 기분”
지난 2일 경기 성남시 한 공원에 딸린 공영주차장. 지역 주민들이 자주 찾고 5m 거리에 경로당이 있는 이곳 주차장의 비상벨은 허울뿐이었다. 경찰의 협조를 받아 직접 비상벨을 눌러 보니, 경광등이 번쩍이면서 알람 소리가 크게 울리더니 20초 후쯤 모두 꺼졌다. 경찰과 연결되지 않은 이 ‘미연계’ 비상벨은 눌러도 소리만 울리는 단순 ‘소음벨’이다. 설치·관리 주체인 성남도시개발공사는 “경찰과 연계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지만, 비상벨을 눌러도 경찰은 아무런 연락을 받지 못했다.
‘신림동 강간 살해’ 등 연이은 강력 범죄로 시민 불안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전국에 있는 안전 비상벨 중 상당수가 이 같은 미연계 소음벨인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가격 문제로 최신식으로 교체하지 못한 낙후된 공원·공영주차장 등에 이런 소음벨이 집중돼 있어 ‘치안 사각지대’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7일 문화일보가 행정안전부의 생활밀착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경찰·지방자치단체 CCTV 통합관제센터·경비업체·관리사무소 등 그 어느 곳과도 연결되지 않은 단순 ‘소음벨’은 전국에 퍼져 있다. 서울에만 후미진 약수터 화장실 등에 47개가 있고 △경기도 639개 △전라도 147개 △경상도 307개 △강원도 47개 △충청도 52개 등 총 1716개나 된다.
무늬만 비상벨인 소음벨이 곳곳에 설치된 이유는 예산 때문이다. 비상벨을 경찰 신고망과 연동시키는 데 필요한 ‘컨트롤 박스’의 가격은 400만 원 수준인 데 비해, 비상벨 단품은 3만 원 정도라는 게 지방자치단체들의 설명이다. 비교적 최근에 설치됐거나 교체된 비상벨은 경찰과 연계가 돼 있지만, 일부 오래된 주차장 등에는 여전히 알람 소리만 내는 비상벨이 설치돼 있다. 후미진 곳일수록 범죄 발생 가능성이 큰데, 이런 곳에서는 비상벨을 눌러도 즉각적인 도움을 받을 수 없는 것이다. 경광등이나 알람 소리가 울리면 주변의 경비원이나 시민이 대신 신고를 해줄 순 있지만, 주변에 사람이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성남시 공영주차장의 경우에도 경비원은 오후 11시부터 오전 5시까진 자리를 비운다고 했다. 성남에서 만난 유모(27) 씨는 “자동으로 신고 처리가 되는 줄 알았는데, 소리만 울리고 끝이었다니 배신당한 기분”이라며 “모형이랑 다를 바가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경찰로 바로 연결되지 않고 지자체가 운영하는 관제센터 CCTV 등을 거쳐 112 신고로 이어지는 비상벨까지 더하면 숫자는 더욱 커진다. 현재 공개된 생활밀착데이터 기준으로는 이 같은 비상벨이 전국에 3만6270개에 달한다. 이는 전체 비상벨(6만9268개)의 절반 수준(52%)이다. 이런 비상벨은 누르면 관제센터 직원이 CCTV로 상황을 파악해 경찰 출동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하게 되는데, 이 비상벨 또한 고장이 적지 않다. 실제 지난 5일 문화일보의 요청에 동대문구가 비상벨 5개를 점검한 결과, 1곳이 스피커 송출 불량이었다. 위험을 느낀 시민이 비상벨을 눌러도 관제센터 직원과 소통이 안 되는 것이다.
누르면 바로 112 신고가 되는 공중화장실 비상벨은 낮은 설치율이 문제로 지적된다. 지난 7월 설치가 의무화됐음에도 8월 기준 평균 설치율이 64%에 불과하다. 세종(38%), 전남(41%), 경북(44%) 등은 설치율이 절반도 안 된다. 평소 공원을 자주 산책한다는 종로구 주민 A 씨는 “설치만 해두고 끝낼 것이 아니라 주기적 점검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전수한·강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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