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유산 등재도 중요하지만…[박경일 기자의 인생풍경]

  • 문화일보
  • 입력 2023-09-22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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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야마나시(山梨)현의 후지(富士)산이 지난 10일로 올해 등반시즌을 마감했습니다. 올 시즌 후지산 방문객 수는 팬데믹 이전 수준을 거의 회복했습니다만, 야마나시현은 관광객 귀환을 기뻐하기보다는 걱정하고 있습니다. 관광객 급증으로 인한 인구과밀, 쓰레기 투기, 인프라 부족 등의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후지산은 2013년 유네스코 세계유산 지정 후 방문객이 2배 이상 증가했습니다. 가장 인기 있는 등반코스인 ‘요시다 트레일’ 출발지점인 5번 휴게소(해발 2300m) 방문객은 2019년에 500만 명이 넘었습니다. 방문객이 늘면서 심각해진 문제 중 하나는 ‘물’입니다. 산 중턱까지 물을 트럭으로 실어나르는 것도, 폐수를 쓰레기와 함께 실어내오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닙니다.

야마나시현이 고심 끝에 내놓은 대안은 경전철입니다. 후지산 등산코스의 3분의 2지점까지 경전철을 놓는 대신, 차량통행을 점차 금지하겠다는 겁니다. 경전철 요금을 지금의 차량통행료 2100엔(약 1만8800원)의 5배에 육박하는 1만 엔(8만9900원)으로 올리면 자연스럽게 방문객 수를 조절할 수 있을 것이란 게 야마나시현의 생각입니다.

최근 이탈리아의 베네치아 시는 내년 봄에 14세 이상 당일치기 여행자에게 5유로(7100원)의 입장료를 거두는 실험을 해보겠다고 선언했습니다. 후지산과 마찬가지로 대규모 관광으로 인한 피해가 속출하자 내린 결정입니다. 입장료가 부과되면 당일치기 관광객은 요금을 납부하고 QR코드를 발급받아야 합니다. 경찰이 불시 검사를 해서 QR코드가 없으면 최고 300유로(42만7000원)의 벌금을 물리겠답니다.

세계유산의 과잉관광 논란이 끊이질 않고 있는 가운데, 세계유산에 등재되자마자 이로 인한 폐해를 경고하는 사례까지 나왔습니다. 지난 17일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열린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우리 가야고분군과 함께 태국의 고대 유적도시 시텝이 세계유산에 등재됐습니다. 그러자 태국 전문가들이 “시텝이 관광객 유입을 감당할 준비가 전혀 돼 있지 않다”고 경고하고 나섰습니다. 폐기물 관리, 열악한 도로, 주차공간 부족 등 인프라 문제에다 미발굴 유적지의 유물약탈까지 우려된다는 것입니다. 유적 도시의 부지 소유권 문제가 정리되지 않은 것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너무나 유명해져서 관광객이 몰려들어도, 도굴이 우려될 정도로 관리가 부실해도 문제입니다. 세계유산은 등재도 중요하지만, 체계적인 유지관리 노력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게 여러 나라의 사례가 던져주는 교훈입니다.
박경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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