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서 납북됐던 신상옥·최은희 부부… 영화같은 탈출[역사 속의 This week]

  • 문화일보
  • 입력 2024-03-11 08:58
  • 업데이트 2024-03-11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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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북한으로 납치됐다가 미국 망명 생활을 거쳐 귀국한 최은희(오른쪽), 신상옥 부부가 1989년 5월 귀국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연합뉴스



■ 역사 속의 This week

1978년 북한에 납치돼 큰 충격을 줬던 신상옥 감독과 배우 최은희 부부는 1986년 3월 13일 극적으로 탈출에 성공해 또 한 번 세상을 놀라게 했다. 부부는 오스트리아 빈에서 감시원의 눈을 피해 미국 대사관으로 뛰어들었다. 대사관 직원이 장미꽃 한 송이를 건넸다. “웰컴 투 더 웨스트(Welcome to the west).” 최은희는 왈칵 눈물을 쏟았다. 8년간의 북한 생활에서 벗어나는 순간이었다.

1976년 신 감독과 이혼한 최은희는 2년 뒤 홍콩에 갔다가 북한 공작원에게 납치됐다. 북한 남포항에 도착했을 때 김정일이 마중 나와 있었다. 실종된 최은희를 찾아 나선 신 감독도 6개월 뒤인 그해 7월 홍콩에서 북한으로 끌려갔다. 두 사람은 북한 영화산업을 발전시키려 했던 김정일의 지시로 납북됐다는 사실을 북에서 알게 됐다고 훗날 증언했다.

신 감독은 2차례 탈출 시도로 수용소에 감금됐다가 풀려난 후 최은희와 재회했다. 납북된 지 5년 만에 북한땅에서 만난 두 사람은 재결합했고, 김정일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신필름영화촬영소를 세워 ‘돌아오지 않는 밀사’ ‘사랑 사랑 내 사랑’ 등을 제작했다. 최은희는 영화 ‘소금’으로 모스크바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북에서 극진한 대우를 받았지만, 감시와 통제에 숨이 막혔다. 부부는 나중에 자신들의 납북을 입증하기 위해 김정일의 육성을 몰래 녹음하는 등 치밀하게 탈출 계획을 세웠다. 17편의 영화를 찍으며 김정일의 신임을 얻어 오스트리아 여행 허가를 받았고, 목숨 걸고 탈출을 감행했다. 이후 미국에서 10년 넘게 망명 생활을 하다 1999년 영구귀국했다.

일각에서는 두 사람의 ‘자진월북설’을 제기하기도 했다. 신 감독이 박정희 정권과 좋은 관계였다가 미운털이 박혀 사업이 망해 북한을 택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최은희는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북에서 총살을 당했어야 믿냐”며 억울한 심정을 밝혔다. “김정일이 꼬박꼬박 내 생일상을 챙겨 줄 정도로 대접해줬으나 원망하는 감정이 강하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최은희는 1953년 신 감독이 연출한 영화 ‘코리아’에 출연하면서 사랑에 빠졌고, 두 사람은 이듬해 결혼한 후 한국 영화의 중흥기를 이끌었다. 2006년 남편을 먼저 떠나보내고 건강이 악화해 오랜 투병 생활을 하던 그는 2018년 92세에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했다. 최은희는 2007년 자서전에서 이렇게 회고했다. “나는 평범한 여자에 불과한데 어쩌다 영화 같은 삶을 살게 됐을까. 나는 분단국의 여배우로서, 신 감독은 분단국의 영화감독으로서 조국의 비극에 희생양이 되는 경험을 했다. 그러나 배우가 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나는 연기를 통해 모든 이들의 인생이 참으로 아름답고 소중하다는 것을 배웠다.”

김지은 기자 kimjieu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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