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비상경영에 간호사도 고통… “반강제 무급휴가, 차라리 탈 임상”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달 27일 서울 시내 한 대형병원에서 의료진이 인큐베이터를 끌면서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소속감 못느껴” 퇴사 줄이어
자격증·해외 간호사 준비도

지난 2월 19일부터 시작된 전공의 집단 사직 사태가 7주째 이어지며 의료 공백에 따른 주요 대형병원들의 비상경영 체제 전환이 속속 이뤄지고 있는 가운데, 소속 간호사들도 병원 이탈 조짐을 보여 상황이 악화하고 있다. 간호사들은 의료 공백 사태에서 병원이 자신들을 지켜주지 않는다고 느끼며 병원을 떠날 준비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3일 의료계에 따르면 ‘빅5(서울대·서울아산·세브란스·삼성서울·서울성모)’ 병원인 연세의료원과 서울아산병원에 이어 서울대병원도 비상경영 체제로 전환했다. 서울대병원은 전공의 사직 기간이 길어지면서 간호사 등으로부터 무급휴가 신청을 받고 있다. 서울아산병원은 최근 간호사 등 직원 무급휴가 기간을 최대 한 달에서 100일까지로 늘리기도 했다. 주요 병원 소속 간호사 중 일부는 전공의들의 빈자리를 메우는 데 따른 피로를 호소하며 이직과 ‘탈(脫)임상’을 준비하고 있다. ‘탈임상’이란 간호사가 병원을 떠나 다른 직장에서 근무하는 것을 말한다.

빅5 병원에서 근무하던 3년 차 간호사 A(27) 씨도 최근 병원을 그만뒀다. A 씨는 “평소 과한 업무량과 환자들의 민원 등으로 몸도 마음도 지쳐 있었는데, 전공의 파업이 시작되면서 병원에서 자율이란 이름으로 간호사에게 무급휴가를 받고 개인 연차를 쓰게 하는 것을 보며 이 직업의 지속 불가능성을 느꼈다”고 토로했다. 그는 “병원을 그만두고 제약회사 등 일반 의료 관련 회사에서 일하기 위한 취업 준비를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병원 소속 간호사 박모(24) 씨는 전공의 파업 이후 무급휴가 기간을 이용해 보건공무원이 되기 위해 필요한 산업위생관리기사 자격증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박 씨는 “나뿐만 아니라 많은 간호사가 휴가를 장기로 내고 엔클렉스(NCLEX·미국간호사시험), PTE(호주 이민을 위한 어학시험) 공부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 씨는 “의사 파업으로 간호사들의 월급과 일상생활이 영향을 받는 사실에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다”며 “이러한 사태가 계속된다면 ‘탈임상’을 시도하는 간호사들은 더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일 서울지역 수련병원 노동자 대표 또한 세브란스병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의사들의 집단행동으로 인한 사태인데, ‘비상경영’이라는 이름으로 병동 폐쇄와 함께 수백 명의 보건의료 노동자들이 무급휴가로 내몰리며 일방적인 임금 삭감을 강요받고 있다”고 비판했다.

조율·이현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