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임 후엔 연극무대 복귀 간절… 홀스또메르·리어왕 도전하고 싶어”[파워인터뷰]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2014년 장관에서 배우로 돌아가 다시 선 무대 ‘홀스또메르’의 한 장면.

■ 파워인터뷰 - 유장관의 남은 무대는

“그럼요. 돌아가야지요, 무대로….”

이명박 정부 첫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지낸 유인촌 문체부 장관은 2011년 퇴임 후 배우로 돌아가 꾸준히 무대에 올랐다. 두 번째 장관직을 수락한 지난해에도 그는 본업에 충실하던 중이었다. 취임 석 달. 장관직 이후를 논하기엔 이르지만, 지난 여정을 돌이켜 보면 그리기 어려운 미래도 아니다. 유 장관은 “무대 복귀를 간절히 원한다”고 했다. “하고 싶은 게 아직 많죠. 이제 정말 잘할 것 같은 역할도 있고….” 50년 배우 인생. 노년을 위해 남겨 둔 작품은 뭘까.

“‘홀스또메르’를 다시 하고 싶어요. 나이가 들어야 진짜 그 맛이 나오는 작품이거든….” 유 장관은 레프 톨스토이의 소설 ‘어느 말 이야기’를 각색한 ‘홀스또메르’부터 언급했다. 한때 촉망받는 경주마였던 늙고 병든 말이 과거를 회상하는 연극으로, 말의 입을 빌려 인생의 희로애락을 이야기한다. 40대 중반 처음 이 작품을 만났던 유 장관은 종종 “80세에 다시 도전하겠다”는 선언을 했다. 그는 “‘늙음’이 뭔지 아는 때에, 더 제대로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다른 이유가 또 있다. 1990년대 말, 유 장관은 극단 ‘유시어터’를 창단한 후 얼마 안 돼 이 작품을 올렸다. 당시 이를 관람한 한 관객이 편지 한 통을 보내왔다. IMF 외환 위기로 사업이 망해 죽으려고까지 했으나, ‘홀스또메르’를 본 후 죽지 않겠다고 결심했다는 내용이다. 잘 만들어진 연극 한 편, 혼신의 무대가 사람을 감동시키고, 위로하고, 살리기까지 한다는 걸 깨우쳐 준 귀한 작품인 것이다.

셰익스피어 작품을 좋아하고, 자주 연기했던 유 장관은 ‘리어왕’에도 도전하고 싶다고 했다. 88세의 이순재 배우가 지난해에도 정정하게, 열정적으로 선보였던 바로 그 연극. 유 장관은 “그렇게까지 내가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며 3시간 20분 동안 쉼 없는 대사를 소화해낸 이 배우를 향한 존경을 표했다.

배우로서 버킷리스트를 공개한 유 장관은 사실은 이제 조금 ‘다른’ 앞날을 상상하고 준비 중이라고도 했다. 보다 ‘작은’ 배역을 맡고 싶다는 것. 무대 위 자연스러운 세대교체를 위한 것이며, 세월에 따른 물리적 한계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연극 세계에선 피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최근 그의 출연작들을 살펴보면,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 지난해 LG아트센터 마곡 이전 개관작 ‘파우스트’에서 그는 ‘나이 든’ 파우스트 박사로 분했다. ‘오징어 게임’의 박해수가 한때 ‘젊은 유인촌’이 맡았던 메피스토 역으로 호흡을 맞춰 이목을 끌었다. 앞서 2022년엔 무려 여섯 번이나 주인공을 했던 ‘햄릿’ 무대에 올랐다. 2016년 공연에선 60대 중반의 나이로 머리가 희끗희끗한 ‘햄릿’을 선보이기도 했으나, 이제 주인공은 후배에게 넘겼다. 햄릿의 복수 대상인 클로디어스 왕이 된 그는 연기 인생 첫 ‘악역’으로 더욱 화제가 됐다. “주인공? 열심히 해도 앞으로 몇 편이나 할 수 있을까요?” 그는 “조연도 좋고, 단역은 더 좋다”고 했다. 그래야, 더 길고 오래 무대에 남아 있을 수 있다며 웃었다.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