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학술총서 500권째

  • 문화일보
  • 입력 2001-01-04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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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국내 최대·최고의 총서로 평가받고 있는 대우학술총서가 500권을 돌파했다.


국내 학술출판 분야에서 명실상부한 최대·최고의 총서로 평가받고 있는 대우학술총서의 500권째 책 ‘해석의 갈등’(폴 리쾨르·아카넷)이 번역, 출간됐다. 지난 81년 대우재단(현 이사장 김욱한)이 국내에 연구인력이 부족하고 학문성과가 부진한 기초학문 분야인 인문사회·자연과학 분야에 지원을 시작한지 20년만에, 83년 대우재단과 계약한 민음사가 총서의 첫째권으로 김방한 서울대 명예교수의 ‘한국어의 계통’을 출간한지 18년만에 이룩한 성과다.

‘인문학의 위기’를 운운하는 담론이 하나의 유행을 이루는 데서 나타나듯 기초학문 분야에 대한 지원이 열악했던 최근 몇년간의 상황을 살펴볼 때 대우학술총서 500권 돌파는 하나의 기념비적인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점에서는 일본 이와나미쇼텐의 ‘이와나미 신서’나 프랑스 갈리마르 출판사의 ‘플레야드’총서가 해당국의 문화나 학술계에 끼친 영향에 못지않은 평가를 해줘야 할지도 모른다.

특히 지난 97년 한국 경제가 국제통화기금(IMF)의 관리체제 아래에 들어가면서 대우그룹이 부도를 맞고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을 진행중인 와중에서도 예산은 줄였지만 지원을 계속했기 때문에 500권 돌파가 가능할 수 있었다. 민음사→아르케→아카넷으로 대우학술총서를 발행하는 출판사가 지난 2~3년동안 바뀐 것도 이같은 어려움을 반영한 것이었다.

대우학술총서는 최창조 전 서울대 교수가 쓴 ‘한국의 풍수사상’같이 20쇄를 찍어낸 예외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팔리지 않은 책이 대부분이다. 자연과학 분야 전문 논저의 경우 불과 100권도 팔리지 않은 책이 비일비재일 정도다. 대우학술총서의 논저·연구번역·공동연구 과제의 선정은 지난 86년부터 대우재단의 위탁을 받은 사단법인 한국학술협의회(현 이사장 김용준)가 수행하고 있다.

지난 81년부터 지금까지 매년 70여건씩 지원돼 지난해말까지 지원된 건수가 1500여건에 이르렀으며, 이 중 3분의1 가량인 500권이 출판된 것이다. 매년 30권 정도씩 출판된 대우학술총서를 분야별로 살펴보면 인문사회과학 124권, 자연과학 153권, 번역 153권, 공동연구 64권, 자료집 6권 등으로 구성돼 있다.한국학술협의회에서 미리 선정한 번역과제들 중 일부가 학계의 현실과는 동떨어진 너무 낡은 목록이라는 지적을 받기도 했지만 국내 연구가 전무하거나 미진했던 분야를 개척한 결과물이 많아 대부분 학계에서 높은 평가를 받아왔다.

지난 86년 한국과학기술상 도서상 저술상을 받은 ‘한국지질론’을 비롯해 ‘소립자와 게이지 상호작용’(87년 한국과학상 대상), ‘홍대용 평전’(87년 한국출판문화상 저작상), ‘한국농학사’(89년 월봉학술상), ‘신제도이론’(98년 자유경제출판문화상), ‘마키아벨리 평전’(2000년 제2회 가담학술상 번역상) 등 수많은 책이 여러 학술 관련 출판상을 받은 것이 총서의 학술적 권위를 입증해준다.

이 점에서 500권째로 나온 책이 최근 들어 국내 학계와 출판계에서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 프랑스 사상가 폴 리쾨르의 저작이란 것도 흥미롭다. 사실 국내에서 프랑스 철학 열기를 이어간 질 들뢰즈와 펠릭스 가타리의 공저 ‘앙띠 오이디푸스’나 자크 데리다의 ‘그라마톨로지’ 등도 모두 대우학술총서의 번역분야 논저로 국내에 소개된 것이었다.

대우학술총서는 이제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안팎의 어려운 환경에서도 기존의 논저·공동연구·번역 분야 총서와는 별도로 대우고전총서(가제)와 석학강좌시리즈 등을 기획하고 있다.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단편과 ‘철학의 원리’(데카르트), ‘모놀로기온’(안셀무수), ‘신앙과 지식’(헤겔) 등이 올해 후반기에 고전총서로 출간되며, 지난해 시작한 ‘석학연속강좌’도 단행본으로 엮어져 일반 독자를 찾아갈 예정이다. 대우학술총서의 장래는 이제 대우재단만이 아닌 국내 학계와 출판계 모두의 노력에 달려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최영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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