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한·일 전통현악기의 ‘신들린 화음’

지난 22일 오후 5시쯤 서울 여의도 KBS의 폴리사운드 스튜디오에서는 평소 듣거나 보기 힘든 장면이 연출됐다. 한국의 전통 악기 해금과 일본의 전통 악기 샤미센(三味線)이 동시에 울리면서 10평의 공간을 가득 채웠던 것이다.

음양(陰陽)의 조화. 해금 소리가 묵직하고 어둡다면 샤미센은 경쾌하고 격렬하다. 점점 고조되는 두 악기의 선율은 마치 서로를 향해 진격해가는 두 마리의 들소 같았다. 충돌 일보 직전의 긴장감이 스튜디오 내부를 맴돈다.

이날 1시간여동안 진행된 즉흥 연주는 한국의 해금 연주자 강은일(37)과 일본의 샤미센 연주자 요시다(吉田)형제의 작품이었다. 사전에 약속된 연주 레퍼토리나 악보가 없었음에도 이들의 연주는 재즈 거장의 애드리브처럼 감탄할 만한 것이었다.

“함께 연주하게 돼 기쁩니다. 저 역시 두 악기가 만나면 어떤 소리를 낼지 궁금했는데 다행스럽게도 썩 훌륭한 화음이 나오는군요.”

활대(해금을 연주할 때 쓰는 활)에 묻은 땀을 닦아내는 강은일이 미소를 지었다. “강은일은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연주자다. 시퍼렇게 날이 선 칼날같은 그의 활대질은 이제 그만의 상표가 됐다”는 오용록 서울대 교수의 찬사가 새삼 떠올랐다.

그는 오는 5월22일 서울 남대문 메사팝콘홀에서 첫 내한공연을 갖는 요시다 형제의 무대에 함께 설 예정이다. 이날 자리는 공연에 앞서 호흡을 맞춰보기 위한 것.

우리에게는 낯선 이름인 요시다 형제는 현재 일본 크로스오버 음악계에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유명 연주인들이다. 각각 5세때부터 샤미센을 연주해온 형 료이치로(良一郞·27)와 동생 겐이치(健一·25)가 들려주는 샤미센의 선율에는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고 있다.

지난해 일본 순회 공연에서 6만여명의 관객을 동원했고 NHK 골드디스크 상을 2차례 수상했으며 크로스오버 연주인으로는 드물게 30만장 이상의 앨범 판매를 기록했다.

이들 때문에 최근 4~5년간 일본 젊은이들 사이에서 샤미센 배우기 붐이 일어났고 중학교 교과과정에 정식으로 전통 악기 수업이 생길 정도. 전통 악기를 소 닭보듯 하는 한국의 젊은 세대들로서는 부끄러운 일이다.

“주변 사람들과 다른 일을 하는 제 자신이 싫어 그만둘까 생각도 해봤죠. 하지만 샤미센이 주는 자유로움 때문에 포기할 수 없었어요.”(겐이치)

영화 ‘감각의 제국’이나 ‘자토이치’를 본 사람이라면 어렴풋이 샤미센이란 악기를 기억할 것이다. 샤미센은 가늘고 긴 대와 4각으로 된 몸통에 3개의 선, 대 위 부분에 실을 묶은 현악기로서 슬대로 연주한다. 영화속에서는 주로 기생이나 앞 못보는 노인들이 샤미센을 연주하는 장면이 나온다. 요시다 형제가 일본 전통악기라는 거부감을 무릅쓰고 내한 공연을 갖는 이유는 뭘까.

“샤미센이란 악기를 전세계에 알리고 싶어서죠. 300년 역사를 가진 악기의 매력을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료이치로)

자신감 넘치는 요시다 형제의 설명에 묘한 질투심이 생긴다. 우리는 과연 우리의 옛것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

“아무리 요즘 음악이 자극적인 맛을 준다고 해도 선조들이 들려주는 그윽한 멋은 따라올 수 없는 법이죠. 그 멋을 어떻게 다시 만들어서 젊은이들에게 소개하느냐가 중요합니다.”

강은일의 해금이 다시 울었다. 그 어떤 악기도 이 오묘한 소리를 흉내낼 수 없다는 생각이 들면서 다시 얼굴이 벌개지기 시작했다. 공연문의 02-730-3608

이승형기자 lsh@munhw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