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에 영변 核시설 방문 요청”

빌 리처드슨 미국 뉴멕시코주 주지사와 빅터 차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 일행이 8일 평양에 도착했다. 방북단에 동행한 AP통신은 이날 평양발 기사로 리처드슨 지사 일행 등이 3박4일간의 방북 일정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2·13 북핵초기합의 60일 이행 시한인 14일을 한 주 앞두고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재가속에 이뤄진 이번 방북과 관련, 리처드슨 지사는 “방북 목적은 한국전 참전 미군 유해 송환에 있을 뿐 핵문제와 관련한 협상 의도는 없다”고 말했다고 AP가 소개했다. 그는 이어 “이번 방북이 2·13합의 이행 시한이 주말인 14일로 다가온 가운데 이뤄지는 점에서 시기적으로 중요하다”며 “대표단에 빅터 차 백악관 보좌관과 공화당측 인사인 앤서니 프린시피 전 보훈처장관이 포함된 상징성을 북한측이 이해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리처드슨 주지사는 또 “북한이 의전을 매우 중시한다며 미군 유해 송환 논의가 북·미간 관계 증진의 신호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방문 일정과 관련, 그는 “북한 최고지도자들과의 면담 및 영변 핵시설 방문 등을 북한측에 요청했으나 북한 체제의 속성상 향후 일정을 예측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리처드슨 주지사 일행은 11일 미군 유해와 함께 자동차편으로 평양에서 서울로 나오기를 희망하고 있지만 이 역시도 답변을받지 못한 상태다.

AP 통신은 이어 리처드슨 주지사 일행이 공항에서 숙소까지 가는 동안 자동차는 거의 눈에 띄지 않았으며 자전거와 달구지를 끄는 사람들로 거리가 붐볐다고 전했다. 이번이 6번째 방북인 리처드슨 주지사는 “이제까지 북한 농촌지역에서 트랙터라곤 한대밖에 보지 못했으며 모두가 직접 육체노동을 할 정도로 빈곤하다고 설명했다”고 AP는 덧붙였다.

한편 빅터 차 보좌관의 방북과 관련, NSC 선임보좌관 출신인 마이클 그린 박사는 이날 “차 박사가 북한에서 김계관 외무성 부상을 비롯한 다른 관리들에게 대북 정책에 관한 메시지를 전달할 것”이라며 “그의 메시지는 부시 행정부가 북한측에 새로운 메시지나 제안(이니셔티브)을 갖고 있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차 보좌관의 동행은 오히려 리처드슨 주지사가 북한측에 잘못된 신호를 보내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즉 부시 행정부는 민주당의 대통령 선거 후보 출마를 선언한 리처드슨 주지사가 정치적 목적에서 북핵 문제에 전향적 입장을 표명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는 풀이였다.

한편 미군 군용기편으로 뉴멕시코 산타페에서 평양으로 직행한 리처드슨 주지사 일행은 평양도착 직후 북한 관리들과의 회담 및 만찬, 북한 국립교향악단 공연, 1968년 북한측에 나포돼 평양 대동강변에 전시돼 있는 미군함 푸에블로호 관람 등이 포함된 일정표를 건네받았다고 AP는 전했다.

일정표에는 김일성 생가 방문도 들어 있다. 앞서 미국 대표단은 평양행 군용기 내에서 북한 내 미사일 기지를 파괴하러 침투했다 빠져나오는 미 해군병사들의 전투담을 그린 영화 ‘에너미라인 Ⅱ, 악의 축’을 보았다고 AP는 소개했다.

워싱턴 = 최형두특파원 choihd@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