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 인질사태 중대 국면>“현지선 탈레반 연루 마피아 의심, 여론 나빠져 오래 끌진 않을 것”

최한우 아시아협력기구(IACD) 사무총장은 26일 한국인 23명의 피랍 현장에 있었던 현지인 버스 운전사 가족과의 전화 통화 내용 공개를 통해 피랍 당시의 상황을 생생하게 전달했다. 피랍현장을 직접 목격한 현지인의 증언이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최 사무총장은 이날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인 피랍 사실이 보도되자 현지인들은 모두 탈레반이 아닌 지역마피아의 소행이라고 주장했다”며 “고급스러워 보이는 전세버스를 타고 가 범인들의 표적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 사무총장은 “아프가니스탄 현지사정에 능통한 봉사단원들이 입수한 정보에 따라 외신보도보다 먼저 피랍 사실을 확인했다”며 사고 직후의 숨가빴던 상황을 전했다. IACD는 사고 직후 현지 봉사단원을 파견, 탐문 끝에 운전사측과의 전화통화에 성공했다.

최 사무총장은 “봉사단원들이 단기로 가서 돈도 없고 한국인은 보통 현지인보다 10살은 어려보여 지역마피아가 인질로 잡아갔을 가능성이 크다”며 “피랍 당시 운전사는 풀려났지만 통역자들도 가즈니 지역 현지어인 파슈툰어는 못 알아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탈레반 대변인 발표가 하루나 걸린 건 도청이 심한 전화 대신 지역마피아가 탈레반측에 사람을 보내 접선하는 데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라며 “접선시 착오가 생겨 피랍자가 18명이라고 말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최 사무총장은 “IACD측 아프가니스탄 현지 봉사단원들에 따르면 경찰 및 지역 토호세력과 유착된 마피아들의 외국인 표적 납치 강도는 빈번하게 발생한다”며 “특히 아프가니스탄 정부의 영향력이 약한 가즈니 이하 남부지역은 탈레반과 연관된 지역마피아들이 활개치고 있어 현지인 사이에서도 위험지역으로 분류된다”고 말했다.

최 사무총장은 “전쟁 이후 미국이 재건사업에 소홀하자 주민들은 탈레반 집권때보다 경제적으로 더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며 “사는 게 어려워져 돈을 뺏으려는 무장세력이 늘었고 일당 15달러를 받기 위해 탈레반 전사로 활동하는 청년들도 많아졌다”고 전했다.

그는 “최근 탈레반 세력이 확장됐다는 분석은 지역마피아가 늘어난 것을 잘못 해석한 것”이라며 “가즈니 지역만 해도 현지 경찰의 3분의1은 마피아거나 그와 관련된 인물일 만큼 마피아가 많아졌다”고 밝혔다.

최 사무총장은 또 “우리 정부가 너무 빨리 철군카드를 내세워 무장단체의 요구사항이 무리해지고 있다”며 “피랍시간이 길어질수록 탈레반측 요구가 강해지고 지역마피아들의 부담이 늘어나 협상이 불리해질 것”이라고 관측했다. 지역마피아는 애초 돈만 챙기면 인질들을 풀어줄 수 있었으나 인질과 수감자 맞교환 등 탈레반의 개입이 많아지면서 자의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이 줄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는 “현지에서 여성 납치는 수치로 여겨지기 때문에 순수 정치적 목적이었다면 처음부터 운전사와 함께 여성들을 풀어줬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최 사무총장은 숨진 것으로 추정되는 배형규 목사에 대해선 “인질을 나눠 억류하고 있는 세력간 의견 충돌로 협상이 잘 안 풀리자 탈레반 성향이 강한 일당이 이같은 일을 저질렀을 수 있다”며 “오늘(26일) 새벽 현지 소식통이 확인한 바에 따르면 사살이 아닌 심장마비로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최 총장은 그러나 “한국인 납치에 대한 현지 여론이 좋지 않게 흘러 범인들도 오래 끌지는 못할 것”이라며 “대부분 시민들은 ‘우린 한국인 좋아하는데 한국인 납치하면 국제망신이다’, ‘이렇게 많이 도와주는데 왜 잡냐’, ‘이 사람들 다 나가면 어떻게 하냐’는 등의 말을 하고 있다고 한다”고 밝혔다. 끝으로 그는 정부의 협상 방향에 대해서 “지역마피아들과 연관 있는 토호세력, 탈레반에 돈을 대주는 중동지역 지도자들을 중심으로 교섭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윤석만기자 sa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