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 최전선을 가다>벵골만 볼라섬, 40년만에 땅 절반 물에 잠겨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방글라데시 볼라섬의 하키몬테니 마을에서 지난 7월말 소년들이 90도 각도의 침식 작용이 일어나고 있는 강변에 서있다. 이 섬은 지난 40년간 절반 이상의 땅이 급격히 불어난 강물에 휩쓸려 갔다. 볼라 = 신보영기자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지구온난화로 홍수가 심해지면서 육지 곳곳이 침수상태인 방글라데시 다카 주변 전경. 다카=신보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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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글라데시 남부의 벵골만에 면해있는 볼라(Bhola)섬으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난했다. 지난 7월말 한국에서는 이제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남루한 수도 다카의 미르푸르 터미널에서 볼라섬으로 출발한 시간은 오전 10시30분. 에어컨도 없이 창문을 모두 열어젖힌 버스가 남부에서 제일 큰 도시인 바리살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4시20분이었다. 왕복 2차선 도로 주변에서 날아온 흙먼지로 머리는 엉겨붙었다. 바리살에서 다시 인력거와 두번의 배를 타고 난 뒤에야 오후 6시30분 볼라섬에 겨우 도착했다.

◆40여년만에 절반 사라진 볼라섬 = 방글라데시는 지난 4월 미국 뉴스위크가 지구온난화 대처 능력이 가장 취약한 하위 5개국 중 한곳으로 꼽은 국가다.

볼라섬은 방글라데시의 64개 지역 중에서도 남동부의 순다르반스와 함께 최악의 피해지로 악명이 높다.

실제 목격한 섬의 상황은 처참했다. 섬의 가장자리에는 어김없이 90도 각도의 가파른 침식 작용이 이뤄지고 있었고, 주거지대 곳곳까지 이미 물길이 침범해있는 상태였다. 지면보다 높이 쌓은 제방이 가장 높은 지대에 속할 정도. 강가를 따라 들어선 판잣집들은 언제 부서질지 모를 정도로 위태로워보였다. 집도, 땅도 잃은 난민들은 임시방편으로 세워놓은 이 4평 남짓한 가건물에서 10여명씩 생활하고 있었다.

이 섬의 툴라투리 마을에서 만난 모하메드 조시무틴(30)은 “10년전만 해도 저 앞에 땅이 있었는데, 그새 9㎞ 너비의 강변이 사라져버렸다”면서 “정부가 피난민들을 위해 만들어준 7개 마을 중 3개 마을도 다시 사라졌다”고 말했다.

한쪽 눈을 실명한 자하나라 베금(여·60)은 “집이 7번이나 떠내려갔지만, 우리는 돈이 없어 못 떠났다”면서 “아들이 생선을 잡으러 나갔는데, 이 돈으로는 손자들까지 10명에 달하는 식구 입에 풀칠도 못한다”고 말했다. 주민 에샤드도 “동네 주민의 70%가 3번 정도 집을 잃었다”면서 “8년만에 4㎞ 너비가 사라졌다”고 말했다. 기자가 이용한 모터보트를 운전한 차하부티(18)는 “강폭이 5년전에 비해 3배가 늘어났다”면서 “한쪽은 가라앉고 한쪽에서는 땅이 새로 생기는데, 새로운 땅은 없어진 땅에 비하면 10분의1도 안된다”고 고래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지구온난화로 물폭탄 = 실마지 마을에 사는 살레아(45)는 기후변화로 인생이 밑바닥으로 추락한 경우다.

15년전 남편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만 해도 땅을 가진 엄연한 자립농이었던 살레아 집안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집마저 떠내려가면서 최하위층으로 급전직하했다. 살레아는 “벌써 3번째 집을 잃었는데, 요즘엔 다른 집에서 일해서 하루 한끼를 겨우 먹는다”고 말했다.

볼라섬이 이처럼 최악의 피해를 본 것은 히말라야 산맥에서 시작된 자무나강과 파드마강이 합류, 거대한 메그나강을 형성하면서 벵골만으로 빠지는 길목에 위치해있기 때문. 지구온난화로 히말라야 만년설이 녹아내리며 벵골만 수량이 급격히 증가했고, 강이 땅을 쓸어가면서 농·어업으로 생활하던 주민들의 생활도 함께 쓸려나갔다. 중심지인 볼라에서 자동차로 40분 거리인 하키몬테니 마을의 알리 후신(60)은 물에 반쯤 잠긴 코코넛 나무를 가리키면서 “저기가 원래 내 집이었는데, 절반이 없어지면서 지금은 한달 월세 300타카(약 4059원)에 남의 집에 살고 있다”면서 “하루 수입은 100타카가 될까말까 한다”고 말했다.

섬은 영토 침식뿐 아니라 심각한 물, 전기 부족 현상도 겪고 있었다. 기자는 볼라섬의 호텔에서 밤새 한숨도 잘 수 없었다. 한국의 여관 수준인 이 호텔의 전력이 끊기기 일쑤여서 무더위 속에서 밤을 보내야 했기 때문. 상하수 시설이 완비돼있지 못하다보니 물이 찔끔찔금 나오면서 머리를 제대로 감기도 힘들었다. 무슬림의 새벽기도를 알리는 방송이 나오는 오전 4시30분까지 투숙객들은 밖에서 잡담을 나누면서 무더운 밤을 지새울 정도였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수도인 다카나 공업중심지인 치타공 등으로 떠나는 주민들이 늘고 있다.

이들 ‘환경난민’이 다카의 슬럼으로 유입되면서 공장에서 벽돌을 부수는 단순 노무자로 전락하는 것. 후신은 “모두가 떠났다”면서 한숨을 쉬었다.

◆삼모작 가능한 ‘풍요의 땅’,‘기아의 땅’으로 변하나 = 다카에서 볼라섬까지 긴 여정에서 기자는 한번도 구릉지대를 볼 수 없었다. 실제로 방글라데시 국토의 8%만이 고지대로, 220여개에 달하는 강이 천혜의 평원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방글라데시의 북부지대 일부를 제외하고는 다른 지역은 이모작, 삼모작이 가능하다. 한반도의 3분의2에 불과한 이 땅이 인구 1억5000여만명을 먹여살릴 수 있는 이유다.

그러나 히말라야가 내린 이 ‘풍요의 땅’은 지금 기후변화의 부메랑을 맞고 있다. 지난 30년간 자무나강과 파드마강의 범람으로 사라진 땅은 총 33만에이커(13만 3500㏊)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환경단체 코스트(Coast)의 지역 책임자 아티쿠 자만이 기자에게 건네준 보고서에 따르면, 볼라섬의 경우 지난 40년간 주요마을인 미르자카르 등을 포함해 약 절반의 땅이 떨어져나갔고 향후 40년내에 아예 사라질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기자가 방글라데시에 도착하기 얼마전인 지난 6월 치타공에서 최악의 홍수와 산사태가 발생, 100여명이 넘는 희생자가 나왔다.

태양빛이 내리쬐는 강가에서 동양인이 신기해서인지 기자 주변에 구름떼처럼 몰려든 순박한 표정의 볼라섬 주민들은 다음번에는 다카의 슬럼을 찾아가야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들이 다행히도 기후변화의 역습에서 살아남는다면 말이다.

볼라섬(방글라데시)=신보영기자 boyoung22@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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