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 지옥? 발전? 인류에게 다가올 ‘3가지 시나리오’ 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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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트 러셀 주연의 ‘솔저(Soldier)’라는 영화가 있다. 가까운 미래에 인간병기로 사육된 병사들의 이야기다. 유전자 조작으로 태어난 새로운 인간형인 토드는 새로운 인간병기 케인 607과 대결하다 처절한 패배를 맛본다. 이로 인해 규율에만 얽매여 살던 토드는 사람들의 몸짓이나 손길에 애정을 느끼게 되고, 인간의 본성을 점점 깨닫게 된다는 줄거리다.

이같은 내용은 더 이상 공상과학영화의 영역에 머물러 있는 게 아니다. 미국 국방부 산하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은 실제로 병사들이 신체적 한계를 극복할 수 있도록 ‘인간 강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에 따르면 전혀 자지 않고 하루 24시간 동안 작전을 수행할 수도 있다. 부상에서 회복되는 시간도 훨씬 빠르다. 광(光)자극 생체조절이라는 방법을 사용, 피부 뼈 신경 연골 힘줄 등에 입은 상처가 나흘안에 아물도록 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까지 나오고 있다. 새로운 인간, 즉 포스트휴먼(Posthuman)의 탄생이 목전에 다가온 것이다.

책은, 이처럼 기술의 발달로 인해 어떤 미래사회가 도래할 것이며, 인간이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에 대해 전망하고 있다. 미국 일간지 워싱턴포스트의 기자인 저자는 자신의 관점이 아니라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취재, 상반되는 시나리오들을 소개한다.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시나리오는 ‘천국’과 ‘지옥’, 그리고 ‘주도’라고 이름붙인 세 가지다.

◆ 천국 시나리오 = 20세기 후반 이후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생명공학과 나노기술, 정보기술 분야의 혁명적 발달은 인간 자체의 ‘조작’이 가능한 세상이 멀지 않았음을 예고하고 있다. 현재로선 환자의 질병과 장애인의 불편함을 고치는 수준에서 이뤄지고 있지만 조만간에 인간이 ‘더 나은’ 존재로 나아가는 데 과학기술이 이용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인간은 지금과는 전혀 다른 존재로 진화할지도 모른다.

발명가이자 인공지능 분야의 과학자인 레이 커즈와일(‘특이점이 온다’의 저자)은 낙관적인 미래 예측을 내놓는다. 그가 내다보는 미래엔 기술의 발달이 기하급수적으로 이뤄져 특이점에 도달한다. 특이점이란 우리의 일상적 세계가 완전히 바뀌면서 다시는 과거로 되돌아갈 수 없는 지점을 뜻한다.

이에 따라 인간 지능을 넘어서는 초지능이 탄생하며, “질병과 가난이 정복되고 아름다움 지혜 사랑 진실 평화 등이 증대되는 등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좋은 일”이 일어난다. 저자와의 인터뷰에서 커즈와일은 우리가 언젠가는 신이 될 것이라고까지 말한다. “우리가 실제로 신이 된다는 것은 아니다”면서도 “하지만 우리는 점점 더 신과 비슷해질 것”이라고 장담한다.

저자는 또 유전자를 조작해 인간의 능력과 상태를 원하는 대로 강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그레고리 스틱, 분자 수준의 제조를 꿈꾸는 나노 기술의 개척자 에릭 드렉슬러, 인간의 후손 내지는 동반자가 될 기계지능의 무한한 발전을 예상하는 한스 모라벡, 마빈 민스키, 로드니 브룩스 등의 장미빛 예측을 소개한다.

◆ 지옥 시나리오 =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1917년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기술의 진보는 병적인 범죄자의 손에 도끼를 쥐여 주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저자가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빌 조이는 이같은 지옥 시나리오를 주장하는 대표적 인물. 그는 “기술 발달에 기하급수적 변화의 커브가 존재”하며 “이같은 커브의 진행을 막을 수 없고 그 결과 말할 수 없이 끔찍한 일이 뒤따르게 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조이는 “거의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나쁜 일들이 일어날 것”이며 “상당수 인류와 생태계의 상당 부분이 빠른 속도로 파괴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게다가 이같은 파국적 재앙 앞에서 “인류는 속수무책일 것”이라고 말한다. “기술은 각 국가·대륙·종족별로 계속해서 빠른 속도로 발전해나가고, 서로 적대적인 세상에서 기술 우위를 놓고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으며 더욱이 “파국적 재앙과 관련된 기술의 확산을 멈추거나 늦추고자 하는 합의에 도달하지 못한다”고 조이는 오늘날의 상태를 분석한다.

선마이크로시스템스의 공동창립자로 정보기술 혁명을 선도했던 조이는 기술 발전이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는 통찰에 이른 후 기업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산속 마을로 칩거해버렸다. 그는 제어되지 않는 나노기술이 무한히 자기복제하는 그레이 구(Grey Goo)를 낳을 것이며, 유전자 조작으로 만들어진 병원균이 인류의 생존을 위협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 주도 시나리오 = 인간이 효과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미래를 선택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사람들은 실제로 부정적으로 보이는 변화를 늦추고, 긍정적으로 보이는 변화를 가속화하는 데 성공할 것이라는 예측이다. 재런 래니어가 이 시나리오의 대표적 주장자다. 그 역시 특이점에 의한 인간존재의 초월을 인정하지만, “인간이 수동적으로 기술 발달의 흐름에 휩쓸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의지와 합의로 방향과 속도를 조절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래니어가 꿈꾸는 미래는 사람들 사이의 소통과 연결이 증대되는 세상이다. 그는 “급격하게 다가오는 기술의 도전에 빠르게 적응하고 주도의 고삐를 놓지 않기 위해서는 사람들 사이의 소통과 연결의 증대가 가장 바람직한 대안”이라고 강조한다. 저자 역시 이같은 래니어의 주장에 공감하고 있다. 천국이나 지옥 시나리오가 아니라, 실수를 반복하고 시행착오를 거치면서도 한 걸음씩 나아가는 인간의 역사가 계속될 것이라는 데 인식을 같이한다.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인물들은 이밖에도 프랜시스 후쿠야마를 비롯, 인류의 미래와 관련해 일가견을 가진 이들을 거의 망라하고 있다. 크게 세 가지 시나리오로 나눠 이들을 분류하고 있지만 각자의 관점에 따라 약간씩 차이가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오늘날 인류사회가 어떤 상태에 있으며,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에 대해 관심있는 이들에게 이 책은 빼놓을 수 없는 참고서가 될 것이다. 책의 원제는 래디컬 에벌루션(Radical Evolution).

김영번기자 zero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