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 기도’에서 욕심을 내려놓아라

대학수학능력시험은 끝났지만 본격 입시철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날씨가 차가워질수록 전국의 교회와 사찰에서 두손 모은 수험생 어머니들의 마음은 더욱 간절해지고 있다.

이미 서울 조계사, 봉은사를 비롯한 전국의 유명 사찰에서는 수험생을 위한 특별 기도법회나 100일 기도가 진행됐고, 전국의 대소 교회 또한 40일 새벽기도회, 철야기도회, 금식기도회 등의 특별기도 모임을 잇달아 열었다.

이런 세태에 대한 비판도 나오고 있다. 한국의 대표적인 종교인 기독교와 불교가 입시를 새롭게 바라보고 이를 개혁하는 동인으로 작용하기 보다 입시 기도 등으로 교육 왜곡과 비인간적인 경쟁을 강화하는 동인으로 작용하는 것은 아니냐는 것이다.

유명 사찰과 대형 교회일수록 앞장서는 입시기도, 내 자녀가 좋은 성적을 얻어 대학에 합격하게 해 달라고 하는 기도, 과연 이대로 좋은가.

◆ 기도는 교육 왜곡을 강화하는 가장 강력한 도구 = 한국의 대표적인 종교인 불교와 기독교가 왜곡된 입시 경쟁을 개혁하거나 완화해가기는 커녕, 이를 정당화함으로써 왜곡을 강화한다는 비판은 최근 기독교계에서 활발하게 나오고 있다. 기독교와 불교가 출세와 성공을 종교적인 축복과 동일시하는 한국인의 문화적인 문법에 편승, 입시에서의 성공을 신의 축복으로 정당화함으로써 입시왜곡을 심화시키는 가장 강력한 도구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장신대 박상진(기독교교육학·기독교학교교육연구소 소장)교수는 최근 발표한 ‘입시에 대한 기독교교육적 이해’란 제목의 논문에서 한국의 입시가 출세주의, 가족주의, 결과 지상주의, 세속주의 등으로 교육 목적과 내용, 방법 등을 심각하게 왜곡시키고 있다고 지적하고, 종교가 이를 개혁하기보다 설교, 기도, 교제, 가르침 등 다양한 양상을 통해 이같은 왜곡을 더욱 강화한다고 주장했다. 입시를 앞두고 경쟁적으로 열리는 각종 기도회만 해도 입시로 인해 고통을 느끼는 학생들의 아픔을 함께 느끼며 문제를 해결하는데 초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녀의 성공과 합격만을 위한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박 교수에 따르면 종교가 입시경쟁을 부추기고 강화하는 듯한 양상은 ‘입시 성공=하나님의 축복’이라는 교회내의 잘못된 가치관과 일맥상통한다.

또 문화평론가 김종휘(하자센터 교사)씨는 최근 ‘2008 수능: 성적과 학벌, 우상인가? 도전인가?’라는 제목으로 진행된 CBS TV 토론 프로그램에 출연, “요즈음 교회는 입시철만 되면‘대학가서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이 신앙의 척도를 증명하는 것’이라는 식으로 판이 달라진다”며 “교회 안에서조차 성적과 신앙이 비례한다거나 성적으로 신앙을 평가하는 듯한 분위기라면 교회와(입시에만 매달리는 왜곡된) 학교가 다를 것이 무엇이냐”고 비판하기도 했다. 같은 프로그램에 나온 김광석(사랑의교회)목사는 “교회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공부하라고 하면서도 그 영광을 한꺼풀 벗기면 세상적인 출세와 성공의 욕망을 감추고 있다”고 꼬집기도 했다.

◆ 욕심을 내려놓는 기도를 하라 = 이런 불교와 기독교의 현실과 달리, 좋은 성적을 달라고만 하는 기도, 자기 자녀만을 위한 입시 기도는 바람직한 것이 아니라는 원칙론에 상당수의 종교계 인사들은 동의하고 있다. 여기서 한발 나아가 불교 서원공동체인 정토회는 입시 기도를 불교의 본뜻을 왜곡시키는 기복신앙이라며 이를 철저히 배격하고 있다. 기독교계에도 이런 기조에 동의하는 이들이 많다.

숭실대 김회권(기독교교육학)교수는 최근 발표한 ‘입시경쟁에 대한 성서적·신학적 입장’이란 제목의 논문에서 “빌립보서 2장을 비롯한 성경의 곳곳에는 다툼을 통해 수월적인(높아지려는) 존재가 되려는 모든 원초적인 권력의지에 대한 심오한 비판과 대안이 등장한다”며 “교회와 학교는 수월성 경쟁에서의 승리가 구원을 가져다 주지 않는다는 점을 확신하여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를테면 수월성의 추구는 자기만 높아지려는 비인간적인 입시경쟁이 아니라 모든 학생들이 최대한의 자아실현을 통해 저마다의 분야에서 경쟁력있는 인재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CBS의‘2008수능’토론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시사 칼럼니스트 김규항(‘고래가 그랬어’발행인)씨도 “크리스천에게 학벌추구는 가장 저급하고 부끄러운 문제”라며 “입시 과열, 학벌 문제에 크리스천은 단호하게 대항해야 한다. 왜곡된 세태를 거슬러 올라 삶을 바꿔가는 사람이 참된 크리스천”이라고 강조했다. 김씨는 이어 “성숙한 크리스천이라면 자신의 자식을 위한 기도만이 아니라 자녀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묻는 기도를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 바람직한 입시 기도에 대해 김종휘씨는 “만약 원치않는 결과가 나와도 거기에 숨은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김광석 목사는 “학부모의 욕심을 내려놓는 기도, 마음을 비우는 기도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종락기자 jr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