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현의 文化데이트>“어려울수록 서로 봐주며 어리숙하게 살았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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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해가 시작된 게 어제 같은데 벌써 연말이다. 올 한해는 유난하다. 새 정부가 출범, 새로운 기운으로 잘 풀려갈 것 같더니 그렇지도 않았다. 종교 갈등에, 내각문제에 촛불이 초가삼간을 태울 듯 거세더니 급기야 미국발 금융위기로 인한 세계적 경제난국의 한가운데로 내몰렸다. 정말 어려운 시절이 도래하니 괜스레 지나간 시간을 아깝게 낭비한 것만 같아 더욱 아쉽다.

성탄절을 앞두고 올 한해를 정리하는 문화데이트 손님으로 김삼환(63·사진) 명성교회 목사를 모셨다. 그는 예장통합 총회장이며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회장이기도 하다. 올해 종교간 갈등이 유난히 심했다. 여기에는 진보와 보수의 이념적 갈등도 큰 몫을 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같은 문제의 중심에 서 있는 김 목사는 양쪽을 모두 아우를 수 있는 드문 목회자다. 18일 오후 서울 강동구 명일동 명성교회에서 김 목사를 만나 한해를 반성하고, 희망찬 새해를 열 수 있는 지혜를 구했다.

지난 7일 그의 예장통합 총회장 및 NCCK회장 취임감사예배는 대단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 김형오 국회의장, 이용훈 대법원장, 조용기 목사 등이 축사를 하는 등 정계·교계 인사가 600여명에 신도가 1만여명이 참석했다. NCCK 회장은 진보적 성격의 개신교 단체로 알려져 있는데 진보쪽 인사는 물론 보수쪽 거물들로부터도 큰 축하를 받은 것이 궁금했다.

김 목사는 “개인적인 삶과 철학이 약한 자, 어려운 자의 편에 서는 것”이라며 “평범한 보통철학으로 보통시민으로 산 것이 그렇게 됐다”고 짧게 말했다.

목사는 말을 주요 수단으로 하는 직업 중의 하나다. 그런데 김 목사는 말을 상당히 아꼈다. 간단명료하게 할 말만 딱 하고 끊었다. 그래서 좀 더 구체적으로 물었다. 명성교회는 신도수가 10만명에 가까운 대형교회다. 그런 대형교회 목사가 진보적인 단체의 대표가 된 것이 좀 이례적이다.

그는 이에 대해 역시 짧게 답했다. “교회는 성서에 기초해 보수적으로 운영합니다. 하지만 생활은 적어도 진보적인 것이 좋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낮아지고 고통을 같이하는 삶이 멋있지 않습니까.”

김 목사의 ‘머슴론’은 유명하다. 취임감사예배에서도 그는 “작은 머슴으로 제 역할을 감당하겠다”고 했다. ‘머슴론’에 대해 물었더니 말이 좀 길어졌다.

“성경에 ‘종’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헬라어 ‘둘로스(dulos)’를 번역한 말입니다. 정확한 의미는 ‘머슴’이 더 가까울 것 같습니다. 열심히 일해서 주인을 섬기고 여유를 갖고 기쁘게 살아가는 삶입니다. 자기 것이 없으니 얼마나 간편합니까. 그만큼 마음은 부유하지요.”

종교인인 만큼 그가 말하는 ‘주인’은 하나님일 것이다. 그러나 요즘 많은 사람들의 주인은 권력이나 돈, 도박, 술 등이다. 그는 이에 대해 “그것은 남을 섬기는 삶이 아니라 머슴이 자기 자신을 위해 사는 것”이라고 딱 잘라 말했다.

“이기주의, 자기중심적인 삶은 혼자 사는 삶과 같습니다. 같이 있어야 행복합니다. 요즘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이 300만명이 넘는다고 하지요. 이는 자기 중심적으로 산 결과입니다. 섬김의 자세로 살아야 합니다. 자기보다 어려운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요. 문을 닫으면 불행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잠깐 왔다가 가는 삶인데 자기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공무원, 정치가 등 ‘공복(公僕)’ ‘머슴’을 자처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더 주인 행세를 하는 것이 사실이다.

“좋은 지도자를 만나는 것은 정말 복입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우리 정치는 정말 만나는 즉시 잔인하게 싸웁니다. 무조건 반대입니다. 부부간에 싸우면 자녀들한테 나쁜 영향이 가는데 정치가 매일 싸우니 국민들에게 좋을 것이 있겠습니까.”

김 목사는 “반대를 위한 반대가 문제”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지도층이 솔선수범해 희생하고 봉사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정말 아쉽다”고 말했다.

올 한해 가장 큰 문제 중의 하나가 기독교와 불교의 종교간 갈등이 아니었나 싶다. 일단 한고비는 넘겼는데 갈등요소는 여전히 잠재해 있는 것 같다. 개신교의 대표단체 중 하나인 NCCK의 회장으로서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했다.

김 목사는 “기독교 대통령이 나와서 그런 것 같다”며 “불교에 대해 많은 배려가 필요할 것 같다. 자주 만나서 좋은 일 많이 하면 된다. 걱정없다”고 낙관했다.

관용을 뜻하는 톨레랑스(tol？？ance)라는 말은 종교전쟁에서 나왔다. 종교전쟁만큼 가혹한 대가를 치르는 전쟁이 없어 다른 사람의 종교를 인정하는 톨레랑스가 모두가 공존하는 길이라는 것을 천주교, 기독교가 바탕이 된 서구사회는 말하고 있다. 공존을 위한 톨레랑스를 위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 물었다.

그는 “다른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며 “보수도 진보도 모두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북한도 공산주의 지도자들이 나쁘지 민중들에게 죄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해야 됩니다. 북한주민을 돕지 않으면 우리나라 사람이라도 도와야 합니다. 그동안 정치, 종교, 언론 등 우리 사회는 분열하며 살아왔습니다. 하나되는 축제와 같은 사회가 필요합니다.”

‘하나되는 축제와 같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가장 시급한 것이 무엇이냐고 묻자 김 목사는 지체없이 “언어문화의 개선”이라고 했다.

“건강한 언어, 긍정적 언어, 배려하고 축하해주는 아름다운 언어사용이 필요합니다. 이것만 만들어지면 변화가 옵니다. 부부가 별장을 갖고 있고 몇백억 부자라 하더라도 ‘집구석에서 뭐하냐’는 등 폭력적 언어를 쓰면 가정은 곧 무너집니다. 월 100만원을 벌어다 주더라도 ‘고맙다, 아껴쓰겠다’ ‘너무 아끼지 말고 맛있는 것도 좀 해서 들어라’ 등 사랑의 말을 쓰면 그 가정은 행복이 넘치게 됩니다.”

김 목사는 이와 관련, 프로그램 내용이 주로 싸움, 갈등 일색인 TV에 대해 비판의 포인트를 맞췄다.

“TV를 보면 온통 싸움뿐입니다. 말 못하는 사람이 없어요. 상대방을 겨냥하는 독설이 가히 폭력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무섭고 잔인한 독이 담긴 언어가 세상을 오염시키고 있습니다. 소망이 있는 말, 사랑이 있는 긍정적인 말을 사용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함께 사는 축제와 같은 사회가 빨리 올 수 있을 겁니다.”

1980년 상가 2층에서 개척교회로 시작한 명성교회가 30년도 안되는 동안에 이같이 대형교회로 성장한 이유에 대해 ‘하나님의 은혜’를 빼고 다른 것을 들어달라고 했다. 김 목사는 그래도 “100% 하나님의 은혜”라면서 “그 다음은 아마 ‘다같이 나눔’에 있다”고 했다.

“내것이라고 하면 욕심이 생깁니다. 우리 것, 모두의 것이라고 생각하고 다 남에게 돌아가는 봉사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성장에 욕심내지 않았습니다. 자연스럽게 모두에게 돌아가는 봉사에 중심을 뒀더니 초심자, 지성인, 남성 등이 특히 많아졌습니다. 좀 모자라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서로 용서하고 봐주며 조금 어리숙하게 살면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김 목사는 “그런데 요즘 많은 사람이 너무 똑똑해져 한쪽이 과열되면서 머리가 너무 뜨거워졌고, 가슴은 얼음 같이 돼버렸다”고 걱정했다.

김 목사는 지난 8월14일 광복절 기념예배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잘 할거라 믿는다”고 했다. 당선 1주년인 지금 이 대통령에 대한 평가를 부탁하자 그는 “전세계적인 경제 위기에 실질적인 비즈니스맨 출신, 행정 경험이 뛰어난 대통령을 갖게 된 것은 국가적 축복”이라며 “의식화된, 이념적인 분이 나라를 이끌었다면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모두 잘 할 수는 없습니다. 잘못이 있지요. 그런데 야구를 할 때 4할 타자면 아주 우수한 선수입니다. 정치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4할에 만족해야지, 9할을 바라는 것은 무리 아닌가요. 국민들이 훌륭한 대통령을 만들 수 있습니다.”

올해를 되돌아볼 때 우리가 가장 반성해야 할 점으로 무엇을 생각하느냐고 묻자 그는 “돈을 쓸 때 잘 썼으면 좋겠다”고 했다. “자본주의 국가이니만큼 돈을 잘 써야 사회가 잘 됩니다. 도박이나 음주문화에 빠지고, 사치, 과시하고 남용하는 문화를 바꿔야 합니다. 기부, 기증하는 문화도 활성화해야 하구요.”

그는 특히 “있는 동안 땅에서 잘 살았으니 떠날 때 사회나 모교 등에 다 주고 가는 기부, 기증문화가 활성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내년은 국제통화기금 시대보다 더 혹독한 한해가 될 거라는 예측이 많다. 우리 국민이 이를 슬기롭게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조언을 부탁했다.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려움이 있어서 좋다고 희망을 가져야 합니다. 야생동물들을 보십시오. 어릴 때는 어머니가 잘 기릅니다. 그러나 때가 되면 버립니다. 철저하게 쫓아냅니다. 메마른 땅에서 생명을 걸고 질주, 하루하루 살아갈 수 있는 자생력을 키우는 겁니다. 우리 국민도 이같은 건강한 정신으로 광야를 달려야 합니다. 어려울수록 자족하며 서로 격려하고 칭찬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문화부장 hyeon@munhwa.com
사진 = 곽성호기자 tray92@munhwa.com

김삼환 목사는…

▲1945년 경북 영양 출생 ▲1978년 장로회 신학대학원 졸업 ▲1980년 명성교회 개척 ▲2000년 2월 한국외항선교회 총재 ▲2001년 한남대 법인이사장 ▲2001년 미국 휘트워스 칼리지 명예신학박사 ▲2001년 국민훈장 목련장 ▲2002년 재단법인 아가페(기독교 교도소) 이사장 ▲2007년 몽골 건국 800주년 기념 훈장 ▲2008년 한국교회봉사단 대표 ▲2008년 숭실대 명예기독교학박사 ▲2008년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총회장 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