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문10답 뉴스 깊이보기>재정난에 ‘强手’ vs 인지도 높이기 ‘정치쇼’… 엇갈린 반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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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시, 지자체 첫 ‘모라토리엄 선언’ 이후 한발 후퇴

경기 성남시가 지난 12일 지급유예(모라토리엄)를 선언했다가 15일 한발 후퇴한 입장을 보이는 등 혼선이 이어지면서 모라토리엄 선언의 진상과 전국 지자체 재정상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성남시의 모라토리엄 선언이 우리 지방자치 역사상 처음인데다 재정상태가 상위권에 속한 성남시가 모라토리엄을 선언한 것을 쉽게 납득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성남시 모라토리엄 선언이 전국 지자체로 확산되면서 지방재정 상태의 일대 위기 상황이 초래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방만한 지방재정 운영에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된 이번 사태를 계기로 모라토리엄 관련 궁금증을 10문10답을 통해 알아본다.

1. 모라토리엄이란 무엇인가

전쟁이나 천재지변, 공황 등으로 경제가 혼란하고 채무이행이 어려워지게 된 경우 국가 등이 일정기간 채무 이행을 연기 또는 유예하는 것을 뜻한다. ‘지체하다’는 뜻의 라틴어 ‘morari’에서 나왔다. 국가가 모라토리엄을 선언한 경우, 채무국은 채권국과 조정작업을 벌여 채무 만기를 연장하게 된다. 그러나 채무상환을 유예받는다고 하더라도 신용이 하락하여 대외거래에 온갖 장애가 뒤따르며, 이로 인한 신용경색 등 경제적 혼란은 불가피하다. 한편 모라토리엄은 채무불이행(디폴트)과는 다르다. 디폴트는 국가가 채권 발행 등을 통해 돈을 조달했으나 갚을 능력이 없어 부도에 직면한 상태다. 쉽게 말해 디폴트는 ‘못 갚는다’는 것이고, 모라토리엄은 ‘나중에 갚겠다’는 뜻이다.

2. 성남시가 모라토리엄을 선언한 배경

이재명 경기 성남시장은 “(전임 시장이) 판교신도시 사업을 위한 판교특별회계에서 차용해 일반회계 예산으로 사용한 5200억원을 당장 갚을 능력이 안돼 지급유예 선언을 한다”고 모라토리엄 선언 배경을 밝혔다. 전임 집행부가 지난 4년간 판교특별회계에서 예산을 전용해 신청사 건립과 공원로 확장공사 등 불요불급한 거대 사업을 무리하게 추진한데다 성남시의 올해 예산이 1조7577억원으로 지난해보다 23%(5345억원)나 감소했기 때문에 모라토리엄 선언이 불가피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국토해양부, 행정안전부 등 정부기관들과 일부 정치권에서는 이 시장이 부채 규모를 과대 포장하는 등 ‘정치쇼’를 벌인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 관련, 성남시가 판교신도시 조성 사업비의 정산도 채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모라토리엄을 선언한 것은 자신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한 돌출 행동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3. 지자체 모라토리엄… 법적책임 물을 수 있나

전·현직 공무원들에게 법적 책임을 묻기는 어려워 보인다. 우리나라가 지난 1997년 모라토리엄 일보 직전까지 내몰리는 등 국가적으로 큰 혼란을 겪었던 것과 관련, 강경식 전 부총리 등은 김대중 정부에 의해 직무유기 혐의로 법정에 섰다. 그러나 이들은 지난 1999년 법원으로부터 “정책 실패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이유로 무죄 선고를 받았다. 성남시의 경우 전임 시장이 특별회계자금을 전용해서 이른바 ‘호화’ 청사를 건립한 것, 현 시장이 모라토리엄을 불쑥 선언한 것 등이 모두 ‘행정 행위’에 속하기 때문에 법적 책임을 묻기는 쉽지 않다. 다만 지자체의 모라토리엄이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키거나 국가 사업 등에 악영향을 끼칠 경우 상급기관인 행안부나 감사원이 나서서 정밀 감사한 후 시정 명령을 내릴 수는 있다.

4. 모라토리엄 도미노 현상 일어날까

우려와는 달리 우리나라 지자체에서는 도미노 현상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란 견해가 많다. 비교적 재정상태가 양호한 지자체가 상당수이고, 지방채 발행도 갈수록 엄격하게 심사하기 때문에 행안부는 지자체의 잇따른 모라토리엄 선언은 없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지자체의 세입은 주로 종합부동산세를 비롯, 부동산 취·등록에 따른 지방세가 주축을 이루고 있다. 세외 수입으로 재산 임대나 사용료, 이자 수입, 과태료 등도 지자체 수입의 한 몫을 차지하고 있다. 만약 지자체의 이같은 수입들이 부족할 경우와 재정자립도가 낮을 경우 중앙정부에서 교부세 등으로 지원해주는 등 제도적인 뒷받침이 다양하다. 여기에 풍·수해 등으로 재해나 재난발생시 국가예비비로 긴급 예산 지원도 가능하기 때문에 행안부는 지급유예 선언 러시는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5. 성남시가 갑자기 한발 물러선 배경은

이재명 시장은 15일 시청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판교특별회계 돈을 갚을 능력과 의지가 모두 있다”고 밝혔다. “모라토리엄이란 용어가 과하더라도 국토부가 본질적 문제에 대해 대책을 마련하는 쪽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말도 했다. 모라토리엄 선언이 ‘너무 나간’ 것임을 인정한 셈이다. 이처럼 이 시장이 한발 물러선 것은 성남시가 전국 기초자치단체 중 재정상태가 상위권에 속하는 데다 국토부 등에서 ‘성남시는 모라토리엄 상황이 아니다’고 정면 반박하고 시민들사이에 불안감이 증폭되는 등 역풍이 거세졌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6. 재정위기 심각한 지자체는

지자체 중에는 성남시보다 더 재정위기가 심각한 지자체가 적지 않다. 강원 속초시는 지난 2003년 대포항을 종합 관광항구로 개발하는 사업을 시작했다가 빚더미에 앉았다. 시공사인 쌍용에 660억원(올해 330억원)을 갚아야 하지만, 부동산경기 침체로 매립지 분양에 실패해 거액의 지방채를 발행해야 할 상황이다. 대전 동구는 무리한 사업으로 직원 급여를 주기가 어려워지고 신청사 건립까지 중단될 정도의 위기에 놓여, 오는 10~12월 3개월간 소요예산 312억원을 1원도 편성하지 못했다. 대전 동구의 채무는 298억원에 달한다. 지난 2007년 400억여원을 들여 신청사를 건립했던 부산 남구는 지난해 20억원의 지방채를 발행해 직원 인건비를 충당했을 정도로 재정이 악화돼 있다. 현재 부채규모는 100억원이 넘는다. 경기 고양시도 매년 예산적자 300억~500억원을 메우기 위해 지방채를 발행하고 있다.

7. 지자체 부채 늘어나는 원인은

아무리 돈이 많아도 씀씀이에 따라 살림살이는 달라지기 마련이다. 민선이후 지자체가 거둬들이는 지방세나 세외수입 증가분은 정체 수준에 비유할 만큼 미미하지만 지자체마다 사업은 갈수록 많아져 지출은 큰 폭으로 증가해 왔다. 지자체가 시행중인 사업 가운데 복지관련 등 일부는 국가지원책의 일환으로 추진하는 사례가 있는데 이 경우 국가의 지원이 이루어지지만 지자체에서 일정액을 부담하는 ‘매칭 사업’은 정교한 예산지원 시스템을 갖추지 않으면 살림이 거덜날 수도 있다. 또 지자체마다 주민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불요불급한 개발정책을 남발하고, 과시용 각종 행사나 축제 개최, 호화청사 건립 등을 무리하게 추진한 것도 지자체 빚을 늘리는 주된 원인이 됐다.

8. 지자체 재정 건전화를 위한 개선 방안은

정부와 국회에서는 이미 지자체의 지방채 발행요건을 강화하는 등 제도적 개선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행안부는 지자체의 지방채 발행 한도 설정을 엄격히 하고 잉여금의 지방채 변제 비율을 높이는 방안을 추진중이다. 특히 지방채 발행 상한을 정하는 지표에 미래의 채무상환액 규모를 산입, 돈을 덜 갚은 지자체의 지방채 발행한도가 오히려 높아지는 문제점을 고치게 된다. 국회에서는 이주영 예산결산특별위원장이 지자체의 재정 건전성 확립을 위해 지방재정 순세계잉여금의 30%를 빚을 갚는데 사용하도록 의무화하는 지방재정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법안은 지자체 재정운용상황 공시항목에 행사, 축제 경비, 민간투자사업 현황, 시민단체 지원보조금 등 민간이전경비 등을 추가해 전시성 사업의 확대를 막고, 방만한 재정운영에 대한 주민통제가 가능하도록 했다.

9. 심각한 재정난 겪고 있는 해외 지자체는

미국 주정부들도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심각한 재정적자에 봉착해 있다. 전미주의회연합에 따르면 주 정부들의 재정적자는 지난 2008년 이후 3000억달러를 넘었으며, 2011회계연도에는 890억달러의 부채가 추가될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50개 주 중 일리노이, 캘리포니아, 뉴욕 등 46개 주가 재정난에 허덕이고 있다. 일리노이는 지난 주 9억달러의 지방채 판매에 나섰으며 캘리포니아는 지난해 7월 재정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일본에서는 지난 2006년 6월 홋카이도(北海道)도 유바리(夕張)시가 재정적자에 시달리다 결국 파산신청을 했다.

10. 해외 지자체들의 파산 및 회생 절차

지자체들의 파산신청도 일반적인 기업의 파산 절차와 비슷하다. 채권기관의 통제하에 부채를 변제하며 갱생 절차를 밟아 나가는 것이다. 미국 지자체가 파산할 경우 적용되는 규정은 ‘연방파산법 챕터9’이다. 자자체 활동을 계속하면서 법원에 의해 정해진 계획에 따라 변제를 하는 것으로 일반적인 기업들의 파산신청제도인 ‘챕터11’보다 파산신청절차가 간소하다. 1995년 6월 캘리포니아 오렌지 카운티가 15억달러의 부채를 갚지 못해 챕터9에 따라 파산선고를 한 바 있다. 일본에서는 파산신청을 하는 지자체가 ‘재정재건단체’로 지정되고 정부의 감독과 통제를 받아들이면 파산보호 절차에 들어가게 된다. 유바리시가 20년간 642억엔의 부채를 갚는 조건으로 시청 직원을 270명에서 70명으로 줄이고 남은 직원들의 월급도 30~60% 삭감한 것도 이같은 절차에 따른 것이다.

이상원·김형운기자 ysw@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