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골프 이야기>“홀인원 기분에 그린피 500만원 ‘한턱’ 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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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샷을 하고 난 뒤 그린 주변에서 사인을 기다리던 앞팀이 ‘와’하고 환성을 내질렀어요. 홀인원이라구요. 갑자기 두근두근 심장이 뛰더니 멍해지더라구요.”

KBS아나운서 출신으로 방송가에서 여전히 명사회자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왕종근(57·사진)씨는 “홀인원을 목표로 공을 치지는 않았지만 한 번 정도는 해볼 만하다”고 본인의 홀인원 순간을 기억했다. 왕씨는 지난 2008년 4월16일 경기 화성의 기흥CC 북코스 3번홀(130야드)에서 홀인원 기록을 작성했다. 그날 왕씨는 ‘오렌지 연예인 골프팀’의 단체 라운드에 참석하기 위해 봄기운이 완연한 기흥CC를 찾았었다. 모두 5팀이 만들어졌고 왕씨의 동반자는 전 프로야구 선수이며 극동대 교수로 재직 중인 김봉연씨와 가수 정수라씨였다.

“아무리 홀인원이 ‘운칠기삼’이라지만 베스트 스코어 82타에 평소 90대 타수를 치는 저로서는 언감생심 욕심을 안냈었죠. 그런데 8번 아이언을 잡고 타석에 오르는 모습을 보더니 캐디가 ‘오늘 거리 좀 난다’며 9번을 권하더군요. 공이 헤드에 맞을 때 ‘딱’하며 연필심 부러뜨리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리고 홀컵 30㎝ 앞에 공이 떨어지더니 또르르 굴러갔어요. 그래도 제가 눈이 나빠 공이 홀컵에 빠진 것은 앞팀의 환호성을 듣고 알았습니다.”

이날 왕씨는 5팀의 그린피 500만원을 모두 지불했다. 그래도 하늘을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은 여전했다. 클럽하우스에선 동료 연예인들이 ‘손 한번 잡아보자’며 일제히 축하를 해줬다. 신곡 발표를 앞두고 있던 동반자 정수라씨는 “홀인원 현장에 있었으니 내 곡 히트하겠다”며 자기 일처럼 기뻐해줬다.

왕씨는 나이 50에 늦깎이로 골프에 입문했다. 크고 작은 행사의 사회를 보며 기업체 대표들로부터 끊임없이 밀려드는 ‘라운드’ 제의를 거절하다 결국 방송후배인 개그맨 김종국씨의 ‘강권’으로 연습장에 이름을 올렸다.

“김포CC에서 ‘머리 올리는 날’ 집사람(김미숙·45)과 부부동반으로 필드에 나섰죠. 그런데 그날 무려 공을 27개 잃어버렸어요. 오비(OB) 나서 숲속에 들어가고, 물에 빠지고 난리도 아니었어요. 그래도 새벽라운드에 조명이 푸른 잔디 위로 떨어지는 가운데 공을 쳤는데 골프장 전경이 제게 신세계로 다가왔어요. 내가 모르는 이런 세상도 있었구나 하는 느낌이었죠. 그러고는 골프에 빠졌습니다.”

그날 이후 왕씨는 꾸준히 연습에 몰입, 타수를 줄여나갔다. 왕씨가 즐겨 라운드를 함께하는 이는 이왕표 한국프로레슬링연맹 회장이다. “이왕표 회장이 힘이 좋아서 그런지 워낙 장타예요. 드라이버샷이 300야드를 넘나들죠. 그래서 함께 라운드를 하면 저도 덩달아 거리가 많이 납니다. 평소 200야드만 날아가던 공이 240야드를 넘기니까요. 그래서 동반자가 중요하긴 한가봐요. 그래도 제가 가장 좋아하는 동반자는 ‘양 파’를 몇개 해도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편한 사람이에요.”

요즘 왕씨의 목표는 ‘싱글 달성’이다. 홀인원도 해봤으니 그외 다른 기록에 대한 욕심은 없다. 그래도 싱글을 고집하는 것은 SBS ‘스타 주니어쇼 붕어빵’에 함께 출연 중인 외동아들 재민(17)군에게 자랑하기 위해서다.

“홀인원요?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아요. 집사람이 제가 홀인원 한 날 그린피 지불 영수증을 보여줬더니 대뜸 하는 말이 ‘여보 앞으로 홀인원하지 마세요’였어요. 지금도 집사람은 그날만 떠올리면 ‘심장이 뛴다’고 하니까요. 그래도 아빠가 골프를 치러다닌다는데 아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싱글은 만들어놔야 하지 않을까요. 베스트 스코어에서 딱 1타 모자라니 충분히 달성할 자신이 있습니다.”

얼마전까지 KBS의 인기 장수 프로그램 ‘TV쇼 진품명품’의 진행을 맡았던 왕씨는 방송경력만 30년이 넘는 베테랑이다. 1978년 부산 TBC에서 출발, 1980년 KBS로 자리를 옮겨 ‘생방송 좋은 아침입니다’ 등 굵직한 프로그램들을 진행했다. 1999년 프리랜서 선언 후에도 주요 프로그램의 사회자로 유명세를 얻었고 요즘은 교통방송(TBS)의 ‘한마음 콘서트’, 대구KBS의 ‘아침마당, 대구’ 등을 진행하고 있다. 이와 함께 지방자치단체나 여성대학 등의 초빙 강사로도 인기를 얻고 있다.

글 = 이경택기자 ktlee@munhwa.com, 사진 = 김동훈기자 dhk@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