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여담>사막의 라이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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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식 논설위원

20세기 초 리비아 독립운동을 다룬 영화 ‘사막의 라이온’은 1981년 12월17일 한국에서 개봉, 민주화 투쟁에 나섰던 젊은이들에게 큰 감명을 주었다. 이 영화는 식민지배국 이탈리아의 무솔리니 파시즘 정권에 맞섰던 유목민들의 지도자 오마르 무크타르의 독립투쟁 실화를 다루고 있다. 광활한 사하라사막과 전투 장면, 흰 수염을 휘날리는 주연배우 앤서니 퀸의 연기도 돋보였지만 서구 제국주의의 야만성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충격적이었다. 전투기를 이용한 민간인 폭격, 무자비한 학살과 고문, 강간 등의 장면은 불과 1년여 전의 광주민주화운동과 오버랩되면서 많은 한국관람객을 울렸다. 당시 리비아에서 대형 공사를 수주하려는 한 기업인이 리비아측의 요청으로 이 영화를 수입해 상영이 이뤄졌다고 한다.

실제 이 영화는 미국 영화사의 작품이지만 대부분의 비용과 현지 촬영 편의 등은 리비아의 카다피 국가원수가 제공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69년 쿠데타로 왕정을 무너뜨리고 집권한 카다피는 식민지 지배자였던 서방국가들과 등을 돌렸고, 리비아의 위대성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이 영화 제작을 지원했다. 무크타르는 20년 동안 독립투쟁을 이끌었으나 리비아 총독 로돌포 그라치아니의 총공세에 밀려 생포되고, 1931년 9월16일 부족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교수형을 당한다. 마지막 부분에 한 소년이 무크타르의 안경을 집어 가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가 카다피를 상징한다고 한다. 카다피는 1942년에야 태어났으니 허구이지만, 2009년 6월 식민지배국이었던 이탈리아를 처음 방문할 때 무크타르의 사진을 가슴에 붙이고 갔을 정도다. 이탈리아에서 ‘상영 불가’였던 이 영화가 해금(解禁)된 것도 이때다.

카다피는 자신이 비난했던 파시즘 정권보다 더 잔혹한 방법으로 민주화 시위에 맞서고 있다. 카다피 철권통치 42년 동안의 희생자는 정확한 통계조차 없다. 무크타르는 생포된 이탈리아 병사에게 “이슬람은 저항 능력이 없는 사람을 죽이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무슬림은 전쟁을 증오한다”면서 돌려보냈다. 적군의 생명까지 고귀하게 여겼던 그를 알기에 이탈리아군도 그의 시신 앞에서 거수경례를 올렸다. 자국민을 학살하는 카다피는 ‘사막의 라이온’을 욕되게 하는 반(反)이슬람, 반(反)인류 범죄자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