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지르고, 몸사리고…‘國政 실종’ 대한민국

최근 들어 정책을 둘러싸고 여야 가릴 것 없는 정치권의 일방통행식 행태와 이에 대응하지 못하는 청와대·정부의 정책 조율 기능 부재로 인해 정책 혼란이 커지고 있다. 특히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청와대·정부와 한나라당, 즉 여권 내 소통 부재는 위험 수위에 이르러 국정 시스템의 부작동을 초래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3일 한나라당의 등록금 인하 대책 발표는 최근 여권 내 국정 난맥상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한나라당은 3년간 등록금을 30% 인하하겠다는 대책을 이날 서둘러 발표했지만 정부는 곧바로 재정 투입 규모가 결정되지 않았다며 조율 부실임을 밝혔다. 여당이 정부와 협의가 끝나지 않은 사안을 일단 ‘지르고 보자’식으로 발표해 버린 것이다. 황우여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24일 문화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솔직히 말해서 기획재정부가 동의를 하지 않으면 어쩔 수 없다”며 “우리가 발표한 것은 더 이상 양보할 수 없는 선”이라며 이 같은 지적을 시인했다.

지난 5월6일 황 원내대표 당선으로 한나라당 신주류가 당의 중심으로 떠오른 뒤 이러한 여권 내 혼란은 지속돼 왔다. 북한 인권법과 관련, 통일부는 6월 국회에서 통과시키자는 입장이었지만 황 원내대표는 북한민생인권법 처리를 김진표 민주당 원내대표와 합의했었고, 한나라당이 소득세·법인세 감세 철회 방침도 사실상 당론으로 결정했지만 청와대와 정부는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해 혼선을 보였다.

이뿐만 아니라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폐지 문제도 여권 내에서 서로 다른 목소리가 정제되지 않은 상태에서 나왔으며, KBS 수신료 인상 처리 문제는 여당 내에서 확실한 방침이 서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청와대도 일반의약품 슈퍼마켓 판매 문제로 보건복지부와 갈등을 보이는 듯한 모습을 보이면서 정부 내 소통에도 문제가 있음을 드러냈다.

야당도 국정 혼란에 일조하고 있다. 민주당은 KBS 수신료 인상과 관련해 6월 내 국회 처리를 원내대표끼리 합의했다 일방적으로 파기했다. 민주당은 5월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 국회 처리 당시에도 당내 분란으로 여·야·정의 합의를 일방적으로 파기하는 모습을 보였다.

김형준(정치학) 명지대 교수는 “등록금 문제는 예산편성권이 없는 여당이 정부에 일방적으로 따라오라고 한 것으로 우리나라 헌법적 질서와도 연결된 문제”라며 “유신시대처럼 청와대와 정부가 의회를 압박하는 것도 문제지만 의회도 일방적으로 정부를 압박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어 “서로 일방적으로 상대를 밀어붙이면 국민들은 혼란스럽고 정부와 의회를 모두 불신할 수밖에 없게 된다”며 “정치권과 정부가 이런 식으로 간다면 앞으로 혼란은 계속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병채기자 haass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