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장모와 백인 사위 ‘좌충우돌 뉴욕 창업記’

마이 코리안 델리 / 벤 라이더 하우 지음,이수영 옮김 / 정은문고

미국서 보스턴의 백인 중산층 출신 남자와 한국인 이민자집안 여자가 가정을 이뤘다. 시카고대학 재학시절 처음 만났고 결혼 후 남녀는 각기 뉴욕서 문예계간지 편집자로, 로스쿨을 거쳐 변호사로 일했다. 한동안 뉴욕 맨해튼에서 문학과 예술을 논하며 유유자적한 삶을 즐기던 남자가 간단한 식품과 생활용품을 파는 잡화점, 델리를 운영하게 된다. 델리의 동업자는 한국인 또순이 장모였다.

미국서 장모와 사위의 관계는 한국의 고부지간만큼 복잡미묘한 사이. 게다가 배경과 기질이 너무도 다른 사위와 장모가 뉴욕 도심서 작은 가게를 함께 운영하는 가운데, TV시트콤 같은 웃기고 울리는 일들이 잇따랐다.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루기 위해 맨해튼 아래 스태튼아일랜드 장모집 지하에서의 처가살이가 그 출발이었다. 사위는 아내와 장모의 제안을 받아들여 낮엔 편집자로 일하고, 밤이면 델리를 운영하며 ‘투잡’의 길로 들어섰다.

뉴욕 구석구석을 돌아다녀 가게를 구했고, 커피 따르기와 베이글에 버터 바르기, 복권 찍기와 바코드 읽기, 금전등록기 사용 등의 잡화점 일과 더불어 뉴요커의 또 다른 삶 속으로 들어섰다. 책은 잡화점의 다양한 일들이 맞물리며 제대로 돌아가기까지 미국인 사위가 좌충우돌하며 경험한 2년간의 창업 스토리이자 한국 처가와의 삶을 담고 있다.

선비형 사위는 세상 풍파를 헤치고 살아온 사업가형 장모와 버거운 동업관계에서 노동의 즐거움을 경험했고, 늘 반복되는 정리작업을 통해 명상의 순간을 즐기기도 한다. 사위는 일단 시작한 일은 강한 추진력으로 밀고 나가는 장모를 지켜보며 경이와 더불어 문화적 간극을 경험한다.

“한국 여자들은 다 이런가. 성실한 딸, 아내, 어머니 노릇을 하면서 힘든 일까지 하는 것으론 성이 안 차나? 친척들을 위해 집을 하숙으로 만든 것도 모자라 꽃꽂이 수강에 교회 성경 교사에 한국음식 요리비법 숙달까지 동시에 해치워야만 만족하는 건가?”

책은 한국인 아내와 장모를 포함해 한국인 이민자를 냉철히 관찰하는 미국인의 분석적 시각이 담겨 흥미진진하다.

“실제 인생사는 좀 다를지 몰라도 장모가 보여주는 유형의 뉴요커는 이곳에서 살아남고자 너무 힘들게 일하고 너무 많은 것을 희생해온 탓에 자기방어를 위해 공격적이 된 사람들을 표상한다.”

카센터부터 식당 웨이터까지 모두와 가격 흥정을 벌이는 장모에게 가격이란 협상의 시작점이다. 또한 두툼한 패딩 조끼에 야구모자를 유니폼처럼 차려입은 한국인 델리들의 성공신화를 읽어낸다.

처가에서 네 침대, 네 옷의 구분 없이 가족이 두루 사용하는 생활이 몹시 불편하면서, 우범지대일지라도 ‘일 때문’이라면 두려움 없이 달려들어 성실과 근면으로 가게를 일구는 모습은 이국인 사위가 봐도 경이 그 자체였던 것.

뉴욕 한국이민자의 억척스러운 삶에 대해 미국인 사위가 느끼는 불편함과 생소함까지 적나라하게 담겨 있는 이 책. 그러나 결국 이질적인 배경과 기질의 남자와 여자가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서로 동화하는 과정을 생생한 에피소드를 통해 보여준다.

신세미기자 ssem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