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박물관 세우는게 내 생애 마지막 꿈”

“책과 함께한 인생에 후회가 없습니다. 태생적으로 어려운 환경이었지만, 책 덕분에 견딜 수 있었습니다. 정치 입문 등 다른 길의 유혹도 있었으나, 출판 외길을 걸어온 것을 잘 했다고 생각합니다.”

윤형두(76·대한출판문화협회장) 범우 대표는 13일 “8순에 가까워 돌이켜보니 인생이 참 아름다운 것임을 절감한다”고 했다. 그는 최근 자신의 출판사를 통해 ‘한 출판인의 자화상’이라는 자서전을 출간했다. 일본 고베(神戶)에서 태어난 후 전남 여수 돌산으로 건너와 성장한 어린 시절부터 출판인으로 활발하게 활동한 1970년대까지의 역정을 담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책을 탐독하고 글을 짓는 것을 좋아하며 겪었던 일화, 대학입학과 함께 출판 일을 하게 된 사연, ‘다리’지 필화사건으로 인한 감옥 경험,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이사로 일하며 출판을 통한 민주화운동에 동참한 과정 등을 330여장의 사진과 함께 소개하고 있다. 특히 학창시절에 만난 친구, 수필가로서 교우한 문인들, 사회 운동을 함께한 동지 등 사람에 관한 이야기들이 한국 현대사의 흐름과 더불어 생생하게 펼쳐진다.

“저는 어머니의 가르침에 따라 좋은 친구들을 사귀기 위해 진심을 다했습니다. 집안 배경이나 학벌이 변변치 않은 제가 출판인으로서 이만큼이나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은 저를 이끌어 준 귀한 선후배, 친구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자서전은 막역한 친구인 정을병(작가), 김상현(정치인) 등을 통해 만나게 된 문학계, 정치계 인사들이 출판사 범우의 필자가 되는 과정을 자세하게 담고 있다. ‘다리’지 필화사건 때 변호를 맡았던 한승헌 변호사, 장을병(전 성균관대 총장), 리영희(한양대) 교수 등과 ‘으악새’ 모임을 만들어 활동한 뒷이야기도 소개했다.

“어려운 시대를 살면서도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려고 애썼지요. 출판인으로서도 좋은 책을 냈다는 자부심은 없으나 나쁜 책은 내지 않았다는 생각은 있습니다.”

그가 이끌어 온 범우는 수많은 단행본과 함께 범우 에세이 문고를 펴내 한국인의 교양 수준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범우의 대표적 책으로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꼽는 이들이 많다”며 “그 책이 한국인의 심성을 정화시켰다는 이야기에 공감하지만, 다른 출판사도 낼 수 있다는 점에서 범우만의 책이라고는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출판인쇄사를 담은 ‘한국전적 인쇄사’와 지금은 절판된 ‘한국의 고지도’와 같은 책들은 범우 아니면 해낼 수 없는 작업이라는 점에서 대표작으로 내세우고 싶다”고 했다.

그는 “출판업이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으나 범우는 정가판매제를 고수하고 홈 쇼핑에도 참여하지 않고 있다”며 “출판사 대표로서, 또 출판문화협회장으로서 출판의 유통질서를 바로잡는 데 기여하고 싶다”는 소망을 피력했다. 그는 “한국이 2012년 베이징 도서전의 주빈국이니 출판계가 힘을 합쳐 잘 준비해나가야 한다”며 “한국 출판이 중국을 기점으로 해외로 뻗어나가는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대표는 자신의 생애 마지막 꿈도 역시 책과 관련된 것이라고 밝혔다. “범우사 건물에 출판박물관 혹은 출판자료관을 지으려고 합니다. 관련 서적을 모아놨으니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추진할 것입니다. 모교인 순천농고가 발전한 순천대의 ‘범우 문고’에도 계속 책을 공급하고 싶고요. 출판협회장 임기가 끝나면, 1980년대 이후의 이야기를 담은 자서전 속편을 펴낼 것입니다.”

장재선기자 jeije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