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폭의 풍경화 보듯… 四季 담은 漢詩, 되살아나다

봄여름가을겨울 / 김종서 지음 / 김영사

옛 한시에서 계절의 변화는 물론, 기쁨과 슬픔, 정과 한이 깃든 당대의 삶을 유추해본다. 옛 시에 계절의 정취와 작가의 심상이 담백한 풍경화나 내밀한 일기처럼 묘사돼 있기 때문이다.

19세기 선비 황오의 시 ‘농가의 이런저런 일을 읊다(田家雜詠)’의 시골풍경은 붉은 색 풍경화 같다. ‘시골집이 조그맣게 밭사이 있어, 감 대추와 밤나무로 둘리어 있네/서릿바람 불어와 무르익으니, 말과 소의 눈에는 온통 붉은빛’.

18세기 실학자 이덕무도 ‘비둘기는 서리맞아 털빛이 윤기나고, 기러기는 추위 피해 모습 막 감도누나/솔장승은 벼슬했나/머리에 모자썼고, 돌부처는 남자건만 입술 붉게 칠하였네’라고 만추의 풍경화 같은 ‘과천가는 길에’를 남겼다.

이 계절의 꽃과 풍미인 국화와 게도 늦가을에 대한 글과 그림에 자주 등장한다. 조선후기 이정보는 ‘해동가요’에서 “국화야 너는 어이 삼월동풍 다 지내고/낙목한천에 네 홀로 퓌였는다/아마도 오상고절은 너뿐인가 하노라’라고 서리 속에 꽃을 피우는 국화에 선비의 절개와 고고함을 담아냈다.

게 두 마리가 갈대이삭을 두고 각축하는 김홍도의 ‘해탐노화’는 기개 있는 선비의 표상같은 게의 역동적인 모습을 잡아낸 명화다.

저자는 선인들의 소박한 심성이 배어 있는 한시 읽기의 즐거움을 일깨워온 한문학자다. 이 책에서 저자는 언어적 미감, 글솜씨를 너머 자연에 대한 애정, 예리한 관찰과 사실적 묘사가 탁월한 옛 시를 사계절별로 가려 뽑아 시에 담긴 흥과 한과 더불어 그림, 노래와도 같은 시-청각적 요소까지 콕 짚어낸다. 옛 시 속 무진장한 정서의 광맥을 오늘 이 시대의 말과 글로 되살려낸 것. 이 책에는 한시뿐 아니라 현대시, 가곡, 동요 및 장승업의 ‘홍백매도’, 신윤복의 ‘단오풍정’ 등 계절별 옛그림도 다양하게 등장한다.

‘잎진 뒤에 피어난 맑은 향내’란 제목의 국화에 대한 옛 시에선 16세기 선비 정철의 ‘함흥 객관에서 국화를 보고’, 문집 ‘청구영언’ 속 작자 미상의 시조와 중국 송대 시인 도연명의 ‘술을 마시며’ 및 홍진구 작 17세기 그림 ‘오상고절’이 나란히 소개된다. 국화주의 안줏감으로 떠올린 명태는 양명문 작사 변훈 작곡의 가곡 ‘명태’와 이어지며, 하나의 시제가 시공간을 초월해 꼬리를 물고 삶의 풍경과 연결된다.

겨울에 대한 옛 시로는 추운 새벽길을 홀로 걸어가는 모습에서 조선후기 박지원의 ‘요동벌판에서 새벽길을 가며’가 정호승의 시 ‘부치지 않은 편지’와 김민기 작사 작곡의 ‘아침이슬’ 등 현대와 조우한다. 또한 봄시의 경우 이수복의 시 ‘봄비’로 출발해 박인수가 노래한 신중현 작사 작곡의 ‘봄비’로 마무리 짓는다.

사계의 시를 문학, 미술, 고전과 현대의 작품을 넘나들며 인문학적 해석을 시도하며 저자는 한시가 사라진 노래, 잊힐 노래가 아님을 일깨운다. 저자는 묻혀 있던 옛글을 과거와 미래를 오가는 통합적이고 친절한 해설과 더불어 현대인의 감성을 자극하며 한시의 세계로 이끈다.

신세미기자 ssem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