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어있는 치유본능을 깨워 ‘몸과 삶의 참주인’이 되라

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 고미숙 지음 / 그린비

‘내 안의 치유본능을 깨워 자기 삶의 연구자가 되자.’

이 책의 저자가 처음부터 끝까지 되풀이해 강조하는 주장의 요지다. 저자는 책에서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신체에 대한 서양의 담론을 짚어가며 동양의학 담론의 특이성을 부각시킨다. 저자에 따르면 동양의학에선 질병과 죽음을 통해 자신의 몸과 인생, 그리고 우주로 연결되는 가르침을 터득할 수 있는 데 반해 서양의학에선 삶에 필수적인 질병과 죽음을 ‘없어져야 하는 것’으로 간주해 성찰의 기회를 박탈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동의보감’이 단순한 의학서가 아니라 삶의 방식과 직결돼 있으며, 모두가 의학적 지식을 누리게 하자는 뜻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동의보감을 통해 자신의 몸을 보다 정확히 바라보고, 자신에게 잠재해 있는 치유본능을 일깨우며, 나아가 자기 삶의 주인공이자 연구자가 될 수 있다.

예컨대 ‘동의보감’은 ‘신형장부도’라는 남성의 몸통 측면을 그린 그림과 함께 “천지에서 존재하는 것 가운데 사람이 가장 귀중하다. 둥근 머리는 하늘을 닮았고, 네모난 발은 땅을 닮았다. 하늘에 사시(四時)가 있듯이 사람에게는 사지(四肢)가 있고, 하늘에 오행이 있듯이 사람에게는 오장이 있다”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의학서이지만 우주와 몸에 대한 글로 시작하는 것이다.

산업화된 근대 이후의 사고방식에서는 자연과 신체도 분리된 ‘개체’로 여긴다. 따라서 우리 신체의 각 부분도 기능별로 분화하고, 의학 체계도 그렇게 짜여 있다. 그렇기에 서양에서는 해부학이 발전했던 것이다. 이에 비해 동양의학에서의 몸은 절개해서 보이는 해부학적 신체가 아니라 정(精), 기(氣), 신(神)이 접속하고 변이하는 자연의 하나였다. 큰 인기를 끌었던 TV드라마 ‘허준’에서 가장 문제가 된 장면은 바로 허준이 스승의 시신을 해부하는 클라이맥스 부분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이것은 서양의학적 지식에 기반한 상상이라는 것. 동양의학에서는 오장육부와 감정이 연결돼 있다고 보았으며, 따라서 고대 중국에서는 의도적으로 해부를 무시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저자가 동양의학의 우수함만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다.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서양담론이 전문가들에게 의학의 영역을 넘겨주어 자기 몸과 감정을 들여다볼 계기 자체를 차단한다면 동양의 담론에서 추구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 몸과 감정을 컨트롤하는 주체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자기 몸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르는 ‘무지의 늪’에서 벗어나 ‘앎에 대한 열정’으로 나아가자고 저자는 강조한다.

“‘동의보감’이 오늘, 우리에게 제시하는 최고의 비전은 바로 여기에 있다. 허준은 말한다. 이 책을 통해 스스로 자기 병을 알아 스스로 치유해 가라고. 또 양생술을 통해 요절할 자는 장수하고 장수할 자는 신선이 되라고.”

김영번기자 zero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