廣告人이 ‘널리 알려주는’ 광고의 세계

아이스크림에서 대통령까지 / 이근호 지음 / 오늘

‘어느 광고인의 비망록’이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36년간 광고 업무에 종사해 온 저자가 자신의 AE(Account Executive·광고회사에서 거래회사와의 모든 업무를 수행하는 임직원) 시절을 되돌아본 내용을 담고 있다. 세상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된 광고들이 만들어진 과정을 세세히 들여다볼 수 있다. 그 뿐만 아니라 광고를 발주한 기업들과 모델이 된 스타들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고, 대국민 이미지를 개선시키고자 하는 최고 권부의 모습까지 구경할 수 있다.

저자는 1975년 국내 광고회사 최초의 공채를 통해 대기업 계열 광고회사의 AE로 입사했다. 저자에 따르면, AE는 주인으로 받드는 광고주의 이익을 창출하면서 소속 광고회사의 수익에 기여해야 하기 때문에 자칫 둘 사이에서 샌드위치가 되기 쉽다. 그런 모호한 위치에서 수많은 사람을 만나며 속으로만 쌓아둔 이야기가 이번에 책으로 나온 것이다. 책을 읽다 보면, 지나간 시간들을 영상으로 찍은 것처럼 세밀하게 반추하는 것에 놀라게 된다. “입사 후 단 한 권도 빠짐없이 간직하고 있는 업무 다이어리와 수많은 서류와 자료들을 꼼꼼히 다시 검토한 다음, 생생한 기록으로 복원하고자 한다.”

1장 ‘잊히지 않는 일들’은 광고인들이 경쟁 회사와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치열하게 펼치는 정보전의 내막을 소개하고 있다. ‘고향의 맛’ ‘그래, 바로 이 맛이야’라는 카피로 유명한 한 회사의 조미료 광고 등에 관한 에피소드를 풍성하게 담고 있다. 노태우 정부 말기에 박태준 당시 민정당 최고위원의 당내 대통령후보 경선 홍보물을 만들다가 긴급히 철수한 일, 그로부터 몇 년 후에 김영삼 대통령의 대국민 이미지 개선을 위한 마스터플랜안을 짰던 경험 등도 담고 있다.

2장 ‘광고 모델과 에피소드’는 소제목만 봐도 흥미롭다. ‘만화가 고우영씨 가족, 컬러 TV 모델이 되다’ ‘커피 CF에 출연할 뻔했던 미당(未堂) 선생 이야기’ ‘최고의 인기 여가수 L에서 김상희로 바뀐 조미료 광고’ 등….

3, 4, 5장(‘어느 날의 토포그래피’ ‘병아리 광고인, 아이스크림에 빠지다’ ‘스스로에게 보내는 커튼콜’)은 광고인으로서의 자화상을 그리며, 내면의 갈등과 함께 보람을 느꼈던 일들을 진솔하게 내비친다. 개인적 고백인 듯 싶지만, 한국 광고 역사와 함께 우리 시대의 모습을 함께 담고 있는 귀한 기록이다.

저자는 시인이자, 소설가이기도 하다. 고교 시절 문예반장을 했던 그는 대학생 때 각종 문학상을 휩쓴 문사였다. 1981년 등단한 후 몇 권의 시집과 소설 책을 출간했으나, 광고 회사에서 일하는 동안에는 창작활동을 병행하기 어려웠다고 했다. 그는 이번에 시집 ‘연금술사의 나비’를 함께 출간하고, “그동안 마음으로만 꿈꿔왔던 창작의 길을 새롭게 걷겠다”고 했다.

장재선기자 jeije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