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 좋은 길>영혼이 출입하는 門 ‘홍살문’… 높은 길은 神道, 낮은 길은 王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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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릉을 찾을 때는 기본적인 지식이 있으면 더 깊이 있게 관람할 수 있다.

앞서 말한 대로 정릉은 최초의 왕릉이면서도 다른 왕후의 능에 비해 규모가 작다. 정릉에는 능을 두른 병풍석이나 난간석도 없다. 광통교를 짓는데 가져다 썼기 때문이다. 1669년(현종 10)에야 신덕왕후 강(康)씨의 신주가 태조와 함께 종묘에 나란히 봉안됐고, 능의 재실(齋室·제사와 관련한 준비를 하는 곳)도 중수됐다. 정자각(丁字閣·왕의 신주를 모시고 제향을 올리는 丁자 모양의 집)과 홍살문(사진)이 세워지고 석물도 복구됐지만, 병풍석과 난간석은 설치되지 않았다.

능을 다시 봉하고 제사를 베풀며 신주를 종묘에 안치하던 날 정릉 일대에 소낙비가 쏟아졌는데, 이 비를 백성들은 ‘세원지우(洗寃之雨)’라 불렀다고 전한다. ‘신덕왕후의 원한을 씻어주는 비’라는 의미다.

홍살문은 신성한 지역임을 알리는 문이자 영혼이 출입하는 문이다. 홍살문에서 정자각으로 이어지는 돌길은 참도(參道)라 하는데 길의 높낮이가 있다. 높은 길은 신도(神道)로 영혼이 다니는 길이고 낮은 길은 왕도(王道)로 왕이 다니는 길이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홍살문과 정자각은 일직선으로 연결되는데, 정릉의 참도는 ‘ㄱ’자로 꺾여있다. 태종이 홍살문이 바로 보이는 것조차 못하도록 막은 것일까? 그보다는 앞에 시내가 있는 지형조건 때문에 ‘ㄱ’자 참도를 조성했을 것으로 본다. 조선 제8대 왕 예종의 원비 장순왕후 한씨의 무덤인 공릉(恭陵)도 같은 이유로 꺾여있기 때문이다. 조선 왕릉 중 두 능만 이처럼 돼 있다.

정릉은 조선 최초의 국모(國母)였으면서 아들을 왕자로 만들려다 자식도 일찍 죽게 하고 자신도 죽어 대접을 받지 못한 비운의 왕비 신덕왕후의 아픔이 서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