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치 도구·소통 수단이었던 ‘王의 선물’

국왕의 선물 / 심경호 지음 / 책문

정성이 듬뿍 담긴 선물, 진심어린 마음이 담긴 선물에 사람들은 감동한다. 선물은 인간관계의 윤활유이자 촉매제인 것이다. 이 책 ‘국왕의 선물’은 조선 왕조를 이끈 역대 27명의 국왕들이 내린 선물과 그에 대해 신하들이 감사의 뜻으로 올린 글들을 소재로 조선시대의 문화를 흥미롭게 톺아본다. 조선의 국왕들은 누구에게 무슨 사유로 어떤 선물을 내렸을까. 책에 따르면 조선 국왕의 선물은 특히 국왕과 신하들을 이어주는 소통의 통로였으며 매개물로 의미가 각별했다. 조선 국왕은 종묘사직을 안정시켜 영속적인 발전을 구가하겠다는 이상을 실현하고자 했기에, 실무행정을 맡은 신하들의 충성을 필요로 했다. 아울러 신하의 권력은 국왕을 통해 구현됐기에, 국왕의 존재가 없다면 사대부 정치는 이뤄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조선의 국왕은 국가에 공을 세운 신하나 교화의 정책상 백성에게 감사나 위로의 뜻을 전하기 위해 그리고 왕족이나 신민에게 사적인 은혜를 특별히 표시하기 위해 선물을 내렸다. 권력 다툼과 연관된 선물 사례도 다양하게 등장한다. 예종은 1468년 유자광이 남이를 모함해 일어난 ‘남이의 옥사’를 다스리는 데 공을 세운 37명에게 익대공신의 칭호를 내리고, 엄청난 물품과 함께 궁중의 술을 내려 주었다. 아울러 국왕은 국가의 주권을 대표하는 존재로서 그 권력을 외교의 장에서 드러내기 위해 외국의 사절에게 사적인 선물을 내리기도 했다.

신료, 공신, 종실, 부마, 지방관 등 사대부와 왕실 등 선물의 대상은 고위층에게만 국한되지 않았다. 군인, 백성, 귀화인, 외국사절, 자신을 길러준 유모, 궁궐의 시녀에 이르기까지 국왕은 필요에 따라 다양한 인물들에게 선물을 증여했다. 특정한 개인뿐만 아니라 나라에 공을 세운 공신들을 함께 묶어 포상한 경우도 많았다. 선조는 재위 37년인 1604년에 이순신, 권율, 원균, 김시민, 이정암 등 임진왜란 때 큰 공을 세운 사람들에게 ‘선무공신’이라는 칭호를 내렸다. 이들에게 내린 선물의 종류도 다양했다. 동옷과 초구 같은 의복에서부터 활, 화살, 말, 서적과 문방사보, 약재와 음식물에 이르기까지 그 종류도 많았고 그 이유도 갖가지였다. 국왕이 선물을 내리는 것을 한자로 내사(內賜)나 하사(下賜) 혹은 은급(恩給)이라 했다. 국왕이 선물을 내리면 신하나 백성은 국왕에 대한 충성의 뜻을 표하고, 때에 따라서는 사은의 의식과 함께 사전(謝箋)을 받들어 올렸다.

국왕의 선물과 관련된 슬픈 역사의 기록도 있다. 조선 조정은 역적의 집과 가솔들을 몰수해 공신들에게 배분했는데, 여성들도 그 배분의 대상이었다. 역적죄로 몰려 공신들의 여종이 된 이들을 공신비(功臣婢) 혹은 공신비첩(功臣婢妾)이라고 했다.

책은 그러나 역사적 사실을 세세하게 목록으로 작성하는 데 목적을 두지 않았다. 그보다는 조선을 ‘거울’ 삼아 비정상적인 행태를 보이고 있는 오늘날 선물 수수 관행을 꼬집고 정면교사로 삼고자 한다. 저자는 “국왕들은 대개 선물도 공기(公器)로서 중시하고 인문주의의 토대 위에서 품격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며 “정치 권력과 선물은 어떤 관계를 맺어왔는지를 살펴보고, 지금 우리에게 바람직한 선물 수수는 어떤 형태여야 하는가를 되묻고자 한다”고 말했다.

김도연 기자 kdych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