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자 책읽기>역사속 지식인 24인의 삶

시대정신과 지식인 / 김호기 지음 / 돌베개

‘물이 미친 듯 휩쓸어가니/ 지척간인들 말소리가 듣기 어렵구나/ 그러나 사람의 시비소리는 귀에 이르니/ 끝닿는 데까지 흐르고야 마는 그 물에서 배워야 하겠네.’ 통일신라 말기 및 고려시대 초기의 유학자인 최치원의 이 시(詩)에는 ‘시대와의 긴장을 견뎌내고 그것을 초극하고자 하는 지식인의 고뇌’가 깃들어 있다. 과연 지식인은 세상이 밝으면 나아가 실천하고, 세상이 어두우면 물러나 은둔해야 하는가. 또 지식인은 자기 시대와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 최치원의 삶에서 이 같은 의문을 제기하는 저자는 당대의 지식인을 통해 역사 속 시대정신 및 지식인의 역할을 탐구한다.

저자는 지식인과 사회변동을 주목해온 사회학자로서 시대정신을 탐구한 역사인물로 24명을 선정, 그들의 삶과 사상을 조명한다. 시대의 한계를 극복하고 비전을 탐구한 인물로 이 책에는 원효-최치원, 김부식-일연, 정몽주-정도전, 이황-이이, 박지원-박제가, 정약전-정약용, 이건창-서재필, 최제우-경허 등 신라시대 이후 구한 말의 인물뿐 아니라 신채호-이광수, 함석헌-장일순, 황순원-리영희, 박정희-노무현 등 일제강점기 이후 21세기 인물도 포함돼 있다.

저자는 ‘이건창-서재필’의 장에서 개혁과 개방의 두 태도를, ‘함석헌-장일순’에선 민주주의와 생명주의를, 또한 ‘박정희-노무현’의 장에선 시대정신으로서의 산업화와 민주화 등, 서로 다른 삶과 사상의 궤적을 짚어낸다. 시대별로 각기 두 인물을 통해 시대에 의연히 맞서서 새로운 미래의 빛을 당당히 탐구했던, 당대 특유의 시대정신과 지식인의 도전과 모험을 조명한다.

신세미 기자 ssem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