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묘한 언변으로 법망 피한 ‘킬링필드 살인마’

자백의 대가 / 티에리 크루벨리에 지음, 전혜영 옮김 / 글항아리

‘폴 포트’를 중심으로 한 급진좌파로 이뤄진 크메르 루주 정권은 1975년부터 1979년까지 4년 남짓 동안 캄보디아 국민 4명 중 1명인 170만 명을 학살했다. 인류 역사상 최악의 범죄 중 하나다. 치떨리는 크메르 루주 대량학살의 고통은 현재진행형이다.

캄보디아 국제전범재판소는 지난 2월 일명 두크(69)로 알려진 크메르 루주 정권의 정치범 수용소장 깡 켁 이우에게 종신형 판결을 내렸다. 2010년 7월 재판에서 두크는 35년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국제전범재판소는 이 같은 하급심 판결을 뒤집고 종신형을 선고한 것이다. 범죄가 충격적이고 악랄했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살인마였다. ‘킬링필드 학살 시기’ 때 악명높은 S-21 교도소(뚤슬렝 교도소)에서 고문과 사형을 자행하면서 결국 1만2000명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국제 전범재판을 전문적으로 취재해온 저자는 두크를 재판한 프놈펜에서의 전범재판 과정에 실제로 참여하면서 이를 생생하게 묘사했다. 제목인 ‘자백의 대가(大家)’는 중의적 표현이다. 두크는 모진 고문, 협박을 동원해 사법테러를 자행하는 데 천부적 소질을 보였고, 자신이 저지른 일에서는 탁월한 언변으로 법적 그물망을 교묘하게 빠져나가는 ‘자백의 대가’였다. 그는 비상한 기억력으로 30년도 더 지난 일을 기억해냈으나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재조합했다. 자신의 범죄를 일부 인정하는 듯하면서도 무조건 상급기관의 명령에 복종했을 뿐이라고 강변했다.

저자는 두크는 대화를 주도하고 통제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봤다. 상대 주장을 인정하기도 하고, 거부하기도 하면서 신경질적인 목소리와 위엄있는 목소리를 적절하게 섞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에게 치명적인 화살이 돌아갈 수 있는 대화를 요리조리 피했다.

책에 따르면 이 교도소에서 사망한 꺼 낌 훗과 그의 아내는 모진 고문으로 몸이 상한 상태에서 목숨을 잃었다. 두크의 옛날 스승이었던 꺼 낌 훗은 심한 구타와 전기 충격을 받은 것도 모자라 배설물을 삼켜야 하는 고문까지 받았다. 프놈펜 재판의 검사측이 17명의 죄수가 나온 한 명단을 살펴본 결과 9명은 어린이였다. 한 교도소 관리인은 “성인 죄수는 사형장으로 끌고가지만 어린이들은 그냥 감옥 근처에 있는 시내에서 죽이고 말았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두크는 ‘명단에 있는 사람을 다 죽여라’는 간단한 지시사항만 적었다. 이따금 두크는 명단 옆에 ‘으스러뜨릴 것’이라고 적기도 했다는 것.

두크는 자신의 매부 2명도 사형에 처했다. 매부 중 한 명은 정치경찰의 부책임자로 역시 크메르 루주를 위해 사형집행인으로 일해왔다. 같은 무리의 손에 당한 격이다.

두크는 두 가지 치명적 실수를 저질렀다. 수학교사 출신인 그는 수학자의 편집증적 실력을 발휘해 꼼꼼하게 기록한 각종 심문문서와 정부와 주고받은 문서 등을 폐기하는 데 실패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몇명 안 되지만 예술가를 살려뒀다는 점이다. 생존한 화가들의 그림은 공포스러운 상상을 떠올리는 데 일조했다. 뚤슬렝 교도소가 주는 공포, 고문과 처참한 형벌을 받아야 했던 죄수들의 삶은 30년의 세월이 지나 14장의 그림으로 남았다.

책은 공산주의 이상사회를 최단기간에 만든다는 미명 아래 유례없는 학살을 자행한 크메르 루주의 실상을 명확하고 실감나게 밝혀낸 르포이자 다큐멘터리다.

예진수 기자 jiny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