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소녀 강간범 ‘무조건 매달아 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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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민편(警民篇):교화와 형벌… / 김정국 원저, 정호훈 저 / 아카넷

“법: 조부모와 부모를 의도하여 죽이면 능지처사하며, 때리면 목을 베는 형벌(참형)을 내리고, 욕하고 꾸짖으면 목매달아 죽이는 형벌(교형)을 내린다. 가르쳐 시키는 일을 하지 아니하고 힘써 봉양하지 않으면 장(杖) 100대를 친다. 부모를 관청에 고소하면 죄가 지극히 무겁다. 수절한 계모는 친모와 같다.”

조선이란 나라가 백성들을 통제하고 이끌어 나가는 방향이나 방법을 구체적으로 담은 책의 제1장인 ‘부모’에 나오는 내용이다. 조선의 국법, 구체적으로 당시 조선정부가 준용한 중국 명나라 형법인 ‘대명률(大明律)’의 규정을 축약해 제시한 처벌 규정은 대단히 엄혹하지만 여기에는 전제가 있었다. 처벌 규정에 앞서 먼저 부모에게 효도를 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는 등 범죄를 저지르면 안 되는 도덕적 이유를 밝혀놓은 것. ‘백성을 그물질하는 정치를 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 책의 서문에도 거론되는데, 백성들이 죄를 지어 처벌받기 전에 도덕을 가르치고 교화하면 그들이 법망에 빠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조선 중기 사림파의 성리학적 이상과 책의 편찬 의도를 엿볼 수 있다.

1519년(중종 14) 황해도 감사였던 김정국(1485∼1541)이 수령의 지방교화를 위해 처음 만든 책은 조선 말기까지 여러 차례 간행되며 꾸준히 활용됐다. 책은 조선의 지방사회와 지방민들의 범죄적 일탈, 그리고 이에 대한 국가의 도덕적 법적 대응방식이 어떠했는지를 살필 때 없어서는 안 될 자료다. 김정국은 바로 이 책을 쓴 해에 일어난 기묘사화(己卯士禍)에 연루돼 파직된 ‘기묘명인(己卯名人)’이기도 하다.

간행시기에 따라 내용이 조금씩 달라졌지만 책은 향촌민들이 저지르기 쉬운 범죄의 유형을 13가지로 나누고 범죄를 저지르면 안 되는 도덕적 이유, 국법에서의 처벌 규정을 공통적으로 간략히 제시하고 있다. 남녀 간의 간통, 강간 등 성범죄를 다룬 11장에 제시된 12세 이하 여자아이의 강간범은 모두 사형(교형)의 중벌을 내리게 돼 있는 처벌 규정을 통해 당시 조선에서도 이 문제가 이슈가 됐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조선시대 중·후기 각각 체제와 구성에서 나름의 개성을 가진 네 가지 형태의 책이 간행·활용됐다. 책의 저자와 허엽·이후원 등 이후 보급자들의 학문 내력과 정치 성향도 흥미롭기 그지없다. 무엇보다 책은 16세기 조선에서 시행된 형벌의 구체적인 내용과 지방 수령들의 정치적 역할 및 성격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의 ‘규장각 새로 읽는 우리 고전 총서’의 하나로 21세기에 다시 나온 책은 적어도 내용면에서는 가장 많은 변화를 준 판본으로 기억될 듯하다. 정호훈 규장각한국학연구원 HK 교수가 원문을 발췌 없이 모두 번역하고 각종 자료를 두루 활용해 본문을 새롭게 구성하는 등 책의 면모를 일신했다.

최영창 기자 yccho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