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충북 옥천군 이원면 지탄리 다목적 커뮤니티센터인 여울못에서 법무법인 태평양의 공익재단 동천 소속 변호사와 법무사들이 마을 어르신들을 위한 법률 상담을 벌이고 있다.
지난 8일 충북 옥천군 이원면 지탄리 이원초등학교 지탄분교. 이 학교는 폐교된 뒤 신농촌형 다목적 커뮤니티센터인 ‘여울못’으로 탈바꿈했다. 이날 이른 아침부터 마을 어르신들이 속속 여울못으로 모여들었다. 이날 국내 굴지의 로펌 태평양 소속 변호사와 법무사가 마을을 찾아 직접 법률 상담을 해 준다고 했기 때문이다. 태평양이 만든 공익재단법인 ‘동천’ 소속 변호사와 직원들은 오전 10시가 조금 넘어서자 여울못에 모습을 드러냈다.
‘조용하기만 한 시골마을에서 법률 상담을 희망하는 사람들이 과연 있을까. 하루 종일 법률 상담소를 운영해도 1∼2사람 정도밖에 상담에 참여하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자의 생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마을 어르신들은 그동안 생활하면서 의문이 들었던 다양한 법 관련 질문을 하나라도 빠뜨릴 새라 상담이 시작되기를 기다리며 되뇌고 있었다.
상담은 법률, 법무, 세무 등으로 나눠 진행됐다. 법률 관련 부분은 태평양 공익활동위원회 소속 조원희 변호사가 맡았다. 법무 부분은 최장욱 법무사가, 세무 파트는 곽영국 세무사가 직접 상담에 나섰다. 국내 굴지의 로펌에서 각 분야 전문가들이 상담을 시작하자 열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이모(60) 씨는 토지 매입과 관련해 계약을 파기했는데 계약금을 돌려받을 방법이 없는지 등을 물었다. 또 다른 마을 어르신은 25년 전 토지 소유주 동의하에 주택을 건축해 지금까지 살고 있는데 소유권이 생기는지 여부 등을 꼼꼼히 캐물었다. 자녀들에게 논밭을 물려줄 경우나 부인 명의로 소유권을 넘겨줄 때 발생하는 상속 및 증여세에 대한 궁금증을 털어놓는 경우도 있었다.
시종일관 굳은 표정을 짓던 한 노부부는 마을에 소문날까 털어놓지 못했던 고민을 털어놨다. 자녀의 이혼 문제로 고민이 깊었던 모양이다. 별도로 마련된 상담 시간에 노부부는 눈물을 흘리기까지 했다고 한다. 조 변호사는 “1사1촌 결연을 맺고 법률 상담을 계획할 때만 해도 효과가 있을지, 법률 수요가 과연 있을지 의문이었다”면서 “정작 마을에서 운영해 보니 말 못할 고민을 털어놓는 경우도 있어 법률적인 조언은 별개로 하더라도 마음의 짐을 덜어드릴 기회가 되지 않았나 싶어 뜻깊었다”고 밝혔다. 1사1촌이 농촌 일손돕기 차원을 넘어 스스로 가장 잘하는 일로 마을을 돕는 재능기부의 현장이 된 것이다.
동천 소속 직원 가운데 법률 상담에 참여하지 않는 20여 명은 폐교의 흔적이 남아 있는 여울못 새단장에 나섰다. 손마다 제각각 페인트 붓을 들고 시커멓게 변한 여울못 외곽 담장에 하얀 페인트를 입혔다. 또 다른 이들은 미끄럼틀에 매달려 오래된 칠을 벗겨내고 형형색색 페인트를 칠했다. 이들의 손길이 닿은 미끄럼틀과 운동장 한 구석 ‘뺑뺑이’는 청색과 홍색으로 반짝반짝 빛나는 새것처럼 단장됐다. 하지만 일이 손에 익지 않은 탓인지 몸에 페인트가 튀어 사람도 백색, 청색, 홍색 물이 들었다. 지켜보던 마을 주민 이사일(72) 씨는 “긴 마포 자루로 페인트를 푹 찍어 계속 칠해야 해. 손 붓으로 그렇게 하다간 하루 종일 걸려도 다 못할 걸?”이라고 참견하며 웃음 지었다.
이 씨는 지탄리가 역사적으로 충효의 고장이라고 자랑했다. 여울못 인근에는 효자문이 세워져 있는데, 연로한 부모님 봉양을 위해 관직에서 물러나 낙향한 뒤 잉어를 끓여 위중한 아버지를 낫도록 하고, 임진왜란 때 왜병이 아버지를 해하려 하자 아버지 대신 칼을 맞아 숨진 박인의 효행을 기린 것이라고 했다. 또 효자문 인근에는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에서 인조와 소현세자를 지키기 위해 참전했다 숨진 충신 박동룡을 기리는 충신문도 있다고 소개했다.
이 씨는 또 자신의 5촌 할아버지뻘인 마을의 웃어른 얘기도 들려줬다. 이 씨는 “오늘 마을을 찾은 변호사 선생님들처럼 마을 판관 같은 역할을 하셨어”라며 “나쁜 일을 하면 어른들도 볼기를 칠 정도로 엄한 어른이셨는데, 마을에 찾아온 태평양 소속 직원들을 보셨다면 분명히 상을 주셨을 거야”라며 웃었다. 지탄리 이장 김희천(61) 씨는 “마을에 찾아와 법률 상담을 해 주니 도움이 된다”면서 “앞으로는 더 자세하고 세밀하게 상담을 해 주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옥천 = 글·사진 장석범 기자 bu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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