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를 죽인 아들… 패륜의 운명적 고리

  • 문화일보
  • 입력 2013-02-18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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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견 소설가 정찬(60·사진) 씨가 자신의 일곱 번째 소설집 ‘정결한 집’(문학과지성)을 펴냈다.

특유의 작품세계를 갖고 있는 작가답게 이번 소설집 역시 묵직하면서도 깊이 있는 질문들을 던진다. 바로 ‘비극과 허무의 세계에서 길을 찾는 존재들’, 즉 인간의 운명에 대한 탐구다. 소설집에 수록된 8편의 단편들은 제각각 뚜렷한 색깔들을 띠고 있지만 공통적으로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운명적 몸부림을 보여주고 있다.

우선, 표제작인 단편 ‘정결한 집’은 지지난해 사회적 파문을 불러일으켰던 사건을 모티프로 하고 있다. 바로 어머니를 살해한 고등학생 사건이다.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자식에게 모질게 손을 대는 어머니, 성적표를 조작하는 것으로 더 큰 체벌을 면하는 자식, 끝까지 자식에게 왜곡된 기대를 밀어붙이는 어머니, 잠든 어머니 앞에 흉기를 들고 선 자식의 모습이 사실적으로 그려진다.

소설은 칼꽂이에 꽂힌 네 개의 칼을 내려다보는 소년에게서 시작해 어머니를 살해한 뒤 범행이 적발되기 직전까지 전개된다. 그렇다고 소설이 마냥 사건을 따라가며 그 사회적 의미를 캐묻는 것에 그치지는 않는다. 오히려 범행을 저지르는 소년의 심리를 파고듦으로써 극악한 패륜의 운명적 고리를 들춰낸다. 예컨대 이런 대목.

“소년은 비로소 자신이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머니의 일부로서 존재했다. 어머니의 몸속에 파묻혀 있는 느낌까지 들었다. (중략) ‘나’는 어머니의 일부다. 그러므로 어머니를 죽이지 않으면 ‘나’를 죽일 수 없다. (중략) 하지만 어머니를 죽이는 일은 쉽지 않았다. 어머니는 소년을 집어삼킨 거대한 괴물인가 하면, 어린 아들을 품에 안은 성모이기도 했다.”

이 밖에도 개발의 미명 아래 불타 죽는 사람들(‘세이렌의 노래’), 백척간두에 올라 생존권을 호소하는 노동자(‘흔들의자’), 신념에 따라 집총을 거부하는 청년(‘녹슨 자전거’), 학술원으로부터 글을 청탁받은 침팬지의 인간에 대한 보고서(‘학술원에 드리는 보고’) 등 수록작들은 거대한 운명의 궤도 위에서 끊임없이 흔들리는 인간들을 보여준다. 그렇다고 그들이 숙명적으로 운명을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용감하게(또는 무모하게) 운명의 궤도에서 벗어나기를 감행한다. 단편 ‘음유시인의 갈대 펜’에서 육신이 망가진 음유시인이 오디세우스를 창조해 더 큰 자유를 얻는 것처럼 말이다.

정 작가는 “첫 소설집 ‘기억의 강’이 1989년에 나왔으니, 어느덧 24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면서 “그동안 소설가로서의 나는 등의 무게를 힘겨워하는 노새처럼 비틀거리며 걸어왔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그 노새에게는 지도도 나침반도 없었다”며 “그럼에도 쉼 없이 걸어온 것은, 아마도 보이지 않는 어딘가에 갈증을 가시게 하는 샘물이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털어놨다.

김영번 기자 zeroki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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