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슈킨부터 솔제니친까지… 러 文豪들에게 음식이란?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러시아 작가의 음식에 대한 관심은 작품 속 음식 묘사의 질과 양에 비례했다. 러시아 제정 말기 시대의 음식문화를 그린 1880년대 러시아 그림. 문화일보 자료사진

러시아 문학의 맛있는 코드 / 석영중 지음 / 예담

러시아인들은 일 년의 절반이 넘는 기간을 금식의 날로 지켜야 했다. 그들은 나머지 기간에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위장을 혹사했고, 또 위장의 혹사가 끝나면 다시 주린 배를 움켜쥐고 살아야 했다. 금식과 폭식이 번갈아가며 그들의 식생활을 지배했다. 이렇게 찢겨진 식생활은 러시아가 낳은 최대의 희극 작가이자 소설가인 고골에게서 무서울 정도로 리얼하게 재현된다. 고골은 지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신의 식욕을 ‘악마’라고 불렀다. 고골의 희극 ‘검찰관’은 음식으로 가득 찬 드라마다. 이 희극 2막에 나오는 하인 오시프의 독백은 배고픔에 대한 하소연으로 가득 차 있다. “아 배고파 죽겠네. 배 속에서 일개 부대 전체가 나팔을 불어젖히듯 소리가 요란하구먼.”

러시아 문학의 거장들은 음식을 자신만의 코드와 상징으로 끌어들여 자신의 문학세계를 풍성하게 키웠다. 먹으면 살고 먹지 않으면 죽는 사람에게, 먹거리가 귀한 시대든 흔한 시대든 음식은 언제나 생명과 삶의 건강한 토대가 되어주는 제1조건이다. 생명력이 퍼덕이는 러시아 거장들의 작품에는 음식이 불멸의 기호처럼 각인돼 있다.

러시아 문학에 대한 저자의 접근방식은 배우고 뛰어넘고 새롭게 채우는 것이다. 저자는 ‘도스토예프스키, 돈을 위해 펜을 들다’와 ‘톨스토이, 도덕에 미치다’를 통해 독자들이 러시아 고전과 더욱 친숙해지는 계기를 마련했다. 이번에는 문학과 맛의 세계를 접목해 새로운 글밭을 일궈냈다.

음식은 위대한 작가들에게 문학적인 영감을 제공했다. 가령 푸슈킨은 표트르 대제의 서구화 정책 이후 ‘남의 것’으로 들어온 프랑스 요리를 포용했다. 하지만 푸슈킨은 예브게니 오네긴 마지막에 삽입된 미완성 원고에서 자신의 입맛을 솔직하게 드러낸다. ‘나의 이상은 아내/ 나의 욕망은 평화와 양배춧국 한 사발, 그것도 큰 것으로.’

푸슈킨에 비해 톨스토이는 프랑스 요리를 러시아 상류층의 도덕적인 타락을 드러내는 상징으로 이용했다. 그의 소설에서 모든 나쁜 인간들은 프랑스어를 지껄이고 프랑스식의 옷을 입고 프랑스 음식을 먹는다. 저자는 톨스토이 소설 중에서 프랑스 요리와 프랑스어, 그리고 프랑스 여자, 이 모든 요소가 골고루 등장해 집중적으로 상류층의 부도덕을 암시하는 대목으로 ‘안나 카레니나’의 레스토랑 장면을 꼽았다. 이 장면에서 웨이터는 손님이 주문하는 모든 요리 이름을 프랑스어로 말한다. 권위를 내세우기 위해 프랑스어를 쓰는 웨이터, 프랑스 여자의 추잡함, 손님이 먹는 프랑스 요리, 이 삼박자가 절묘하게 어우러져 부도덕의 절정을 보여준다.

곤차로프는 러시아 음식 백과사전을 방불케 하는 ‘오블로모프’를 통해 죽음에 이르는 요리를 선보이며 모든 인간은 죽음 앞에 무력하다는 철학을 비관적으로 전달했다.

체호프는 러시아 사람이라면 누구나 먹는 사워크림 등의 음식으로 끊임없이 범속한 일상을 가슴 시리게 환기했다. 반면 도스토옙스키는 그 음식(빵)을 생명의 양식이자 삶과 죽음을 연결하는 그리스도의 몸으로 초월시켰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가 대표적이다. ‘거장과 마르가리타’를 쓴 불가코프는 불타지 않는 원고와 불타는 레스토랑을 대비시켜 소비에트 시대를 살았던 문학의 순교자들을 기렸다. 파스테르나크는 혁명이나 조국이나 역사 같은 거창한 대의가 아니라 평범한 가정식 백반과 마가목 열매로 닥터 지바고의 시혼을 지폈다. 무엇보다 솔제니친은 어떤 것도 인간을 완전한 짐승으로 전락시킬 수 없으며 어떤 상황에서도 인간이 승리해 신으로 승화할 수 있는 고결한 정신을 시베리아 강제노동수용소의 위대한 식사를 통해 증명했다.

러시아 작가들은 음식과 먹는 행위라는 두 극단의 상징적인 의미를 동시에 끌어안으면서 그 스펙트럼을 거의 무한대로 넓혀갔다. 일단 음식은 물질인 동시에 물질을 초월하여 먹는 사람의 심리와 인격을 비추는 거울이 되기도 하고, 인간과 인간 사이의 교감을 가능케 하는 언어이기도 하며, 특정 공동체의 가치를 대변해 주기도 한다. 맛은 역사 이래 사람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 중 하나였다. 미각은 삶 자체를 아름다운 잔치로 만들어준다.

예진수 기자 jiny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