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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게재 일자 : 2013년 04월 19일(金)
끝나버린 성장, 끝모르는 욕망… ‘제3의 길’ 찾아라
한계에 부딪힌 성장 인정하고 공존위한 새 시스템 구축해야 페이스북트위터밴드구글
서구의 종말, 세계의 탄생 / 에르베 켐프 지음, 권지현 옮김 / 아포리아

‘상전벽해’는 뽕밭이 푸른 바다로 변한다는 뜻의 고사성어로 세상이 몰라볼 정도로 바뀐 것을 비유할 때 쓰는 말이다. 비슷한 어감의‘상전이(相轉移)’라는 말이 있다. 마치 고체가 액체로 바뀌 듯 외부 변수가 일정 수준에 이르면 시스템의 상(相)이 바뀌는 것을 뜻한다. 하루가 다르게 비약적으로 발전한다는 성장의 신화가 ‘상전벽해’라는 말로 압축됐다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제가 위축되는 지금 시대의 양상은 ‘상전이’라는 말로 치환된다. 갑작스러운 성장은 스스로 멈추는데, 중국과 인도 경제의 급브레이크가 이를 잘 말해준다. 동전에는 항상 양면이 있듯 경제성장의 그늘에는 에너지 위기가 숨어 있다. 저자는 균형을 잃은 지구의 거대 생태계들도 상전이를 일으키기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프랑스 최고의 지식인이자 과학전문지와 르몽드 등에서 활약한 저널리스트인 저자의 의식은 남달리 예민하다. 저자는 경제성장 동력이 고갈되고, 지구촌 생물권이 한계점이 도달하면서 결국 서양의 빈곤화, 신흥국가의 성장 정체라는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고 봤다. 그는 한 시대를 풍미한 미국의 경제학자 로스토의 근대화 이론에 ‘비싼 에너지 가격’이라는 핵심 문제가 빠져 있다고 꼬집는다. 로스토는 경제발전단계를 전통사회-도약준비단계-도약단계-성숙단계-고도 대중소비 사회로 구분했다. 이 같은 로스토의 ‘성장 5단계론’이라는 달콤한 환상에 빠진 학자들의 관점과 달리 그는 서구 문명의 부재와 결핍을 직시한다. 걷잡을 수 없는 소비욕망과 대비되는 자원의 생산한계점, 최근 두 차례 서양의 경제 위기에서 나타난 서양의 빈곤화, 비싼 에너지, 불평등의 독(毒), 환경쇼크 등 다양한 분석틀로 재단하면서 이를 냉철하게 바라볼 수 있는 지혜와 통찰력을 제공한다.

오랫동안 경제가 크게 발전했던 나라에서는 ‘성장의 피로’가 두드러지고 있다. 경제 위기가 닥치면 서양 국가들이 수입을 줄이므로 신흥국은 더 이상 경제성장을 수출에 기댈 수 없게 된다. 신흥국의 성장은 민주주의의 딜레마에 직면했다. 신흥국과 후진국의 성장이 침체되거나 아예 멈출 수도 있는 심각한 상황이다. 해법은 서양에서 대성공을 거두었던 포드식 모델이다. 임금을 올려서 내수의 파이 자체를 키우는 것이다. 저자는 이 같은 방식이 통하기 위해서는 성장의 결실을 분배하는 방식을 달리해야 한다고 말한다. 즉 불평등을 줄이고 지배 체계를 견제해야 한다는 것. 빈부격차는 50년이나 100년 전에 비해 지금이 훨씬 크다. 또한 소득과 특혜가 줄어드는 걸 달가워하지 않는 지도층이 고삐를 단단히 틀어쥐고 있는 국가에서 이를 실천하기 어렵다.

저자의 주장을 요약하면 이렇다. 한정된 생태 공간에서의 소유와 소비에 근간을 둔 전통적인 성장 방식은 이제 한계에 봉착했다. 이는 서양의 빈곤화로 귀결되고 있다. 선진국 국민조차 에너지와 물질 소비를 줄여야 하고 또 줄이게 될 것이다. 과거의 수익이 더 이상은 기능하지 않게 될 것이고, 성장은 되돌아오지 않으며, 에너지 가격과 생태학적 손실은 결국 경제의 구조를 바꾼다. 200∼300년 동안 지속된 유럽의 독주가 끝난 뒤 선진국과 신흥국 간 벌어진 격차를 줄이는 대수렴이 시작됐다.

저자는 “갑작스러운 경제성장은 사춘기와 비슷하다”고 꼬집는다. 사춘기에 몸이 변하듯이 사회도 갑작스러운 변화를 거쳐 새로운 균형을 찾는다는 것. 성장의 충격이 클수록 그 여파도 큰 혼란을 초래한다. 수백만 명이 누리는 부유한 삶과 비교해 저소득층도 잘살고 싶다는 욕망이 생기지만, 경제성장이 둔화되면 그러한 욕망이 충족될 수 없게 된다. 그 실망감은 결국 분노로 변한다. 책에 따르면 새로운 풍요를 맛본 사람들은 물질 소비 외에 다른 욕망을 갖게 된다. 교육, 건강, 은퇴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사회는 이러한 것들을 감안해 전체 예산을 새롭게 편성해야 하므로 결국 경제를 더 성장시킬 투자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저자는 환경 위기 영향으로 전쟁이 발발할 가능성이 있다는 섬뜩한 경고를 했다. 기후변화가 일어나면 많은 사람이 더 맑은 하늘을 찾아 이동할 것이며 결국 군사 대치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이 늘어난다는 것. 또한 지구 인구 90억 명이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선진국 국민처럼 살다가는 생태계가 견딜 수 없게 된다. 정복, 폭력, 효율성, 파괴를 중시하는 신석기시대의 정신으로는 인류가 생물계의 리듬, 지구의 자원과 조화를 이루는 생태시대를 살아내기 어렵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이기심과 탐욕으로 대표되는 소유양식에서 존재의 삶으로의 전환’을 요구한 사회철학자 에리히 프롬처럼 저자도 우리가 물질 소유에서 행복으로 세계관을 바꿔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과소비 문화를 바꾸고 검소함을 조직화하자고 촉구한다.

저자는 “컴퓨터 통신, 여행, TV, 무역 등에 힘입어 우리는 인류역사상 처음으로 하나의 사회를 형성하고 있다”며 “역사는 약 10억 개의 컴퓨터가 서로 연결되고 확장될 수 있는 70억 명의 창의력과 지성에 비례하는 힘으로 앞으로 나아간다”고 역설한다. 저자는 미래를 밝히기 위해 인류 역사의 뿌리를 굽어보면서 붕괴해가는 사회를 재건할 수 있는 생각과 수단을 진지함과 분노와 희망으로 그려내고 있다. 하지만 인류의 위기를 헤쳐나갈 기술혁신의 미래와 사회공학에 대해 좀 더 다양한 담론을 담아냈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남는 책이다.

예진수 기자 jiny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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