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세하고 감각적인… 여성작가 ‘3인 3색’

  • 문화일보
  • 입력 2013-07-25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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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받는 여성 작가 세 명의 신작 장편소설이 잇달아 선보였다. 최근 출간된 강영숙(46) 작가의 장편 ‘슬프고 유쾌한 텔레토비 소녀’(문학과지성사), 조해진(37) 작가의 ‘아무도 보지 못한 숲’(민음사), 구병모(37) 작가의 ‘파과’(자음과모음)다. 여성 작가 특유의 섬세한 감성과 감각적인 문체가 돋보이는 세 장편소설은 각각 독특한 작품세계를 펼쳐보인다.

우선, 강영숙의 ‘슬프고 유쾌한 텔레토비 소녀’는 ‘잘나가는’ 30대 남성과 10대 소녀의 사랑을 그리고 있다. 얼핏 보면, 사회적으로 지탄받아 마땅한 원조교제인 셈이다. 하지만 딱히 그렇게만 몰아붙일 수도 없는 것이, 남자는 마치 소년처럼 사랑에 미숙하다. 소녀 또한 외로움과 막막함의 바다에서 헤매고 있다. 그렇다고 이들의 사랑이 사회적으로 용인받을 수 있을까. 소설은 사랑과 부도덕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외줄타기를 보여준다.

미국 뉴욕에서 유학한 뒤 초고속 승진으로 다국적 전자회사의 서울 지사장이 된 남자 동석. 37세의 그는 도심의 오피스텔에서 살며 빡빡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경쟁사회에서 성공한 전형적 남자인 것.

완벽한 그에게 무더운 어느 여름날 불쑥 텔레토비 인형을 든 소녀가 날아든다. 오피스텔 앞에서의 우연한 만남이다. 소녀의 이름은 하나, 열일곱 살이다. 빚 때문에 풍비박산난 집에서 가출한 하나는 PC방을 전전하며 살아간다.

당연히 돈과 섹스가 교환되는 관계에서 두 사람은 시작한다. 하지만 동석에게 거부할 수 없는 사랑이 스며든다. 그러나 그 사랑은 오히려 하나의 몸을 피폐하게 만들고, 영원한 결핍 속에 소녀를 빠뜨린다. 동석의 욕망과 필요에 의해서만 하나에게 사랑과 보호가 제공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원조교제와 뭐가 다르지 하고 반문할 만하다. 여기에 이 작품의 특징이 있다.

작가는 결코 두 사람의 관계를 미화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마냥 질퍽한 욕망의 늪에만 빠뜨리는 것도 아니다. 아슬아슬한 외줄타기를 보여주는 것이다. 작가는 어쩌면 사랑과 욕망의 불가분(不可分)함을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조해진의 ‘아무도 보지 못한 숲’은 가족과 공동체에 관한 소설이다. 주인공들은 자신의 부재(不在)만이 스스로의 존재를 겨우 증명해줄 수 있는 유령과도 같은 존재들이다. 엄마가 진 빚 때문에 여섯 살이었던 동생 현수는 조폭들에게 팔려간다. K시 기차역 가스폭발 사고의 사망자로 위장신고돼 보상금과 함께 조폭들에게 넘겨진 것. 현수는 가족들을 원망하며 신원이 말소된 상태로 12년간 살아왔다. 서류 위조 브로커로 키워진 열여덟 살의 현수는 자신의 존재를 숨긴 채 누나 미수의 집에 드나들기 시작한다.

동생이 죽은 줄로만 아는 미수는 현수에 대한 죄책감과 그리움으로 그림자처럼 살아가고 있다. 빌딩 로비의 안내원인 미수에게는 자신과 너무나 꼭 닮아서 헤어질 수밖에 없는 연인 ‘윤’이 있다. 같은 빌딩에서 보안요원으로 일하는 윤은 꽤 지명도 있는 4년제 대학을 나왔지만 그 사실을 감추고 있다. 자신을 학대하는 만큼 윤은 미수에게도 자주 화를 낸다. 상처가 또다른 상처를 내며 이별 아닌 이별이란 어정쩡한 상황으로 그들을 몰아간다. 작가는 소설에서 뜨거운 가족애를 그리는 동시에 연인들의 슬픈 사랑을 묘사하며 궁극적으로는 인간 내면의 성장을 보여주고 있다.

구병모의 ‘파과’는 더욱 독특한 상상력을 펼친다. 소설의 주인공은 청부살인을 업으로 하는 60대 여성이다. 한마디로, ‘노파 킬러’인 것. 그녀는 지난 40년 동안 숱한 표적을 처리하며 업계의 대모 위치에 오른 프로다. 무정하고 냉혹하게 스스로를 단련해온 지난 세월 동안 그녀는 삶의 희로애락에 무감각했다. 여성으로서의 행복 역시 남의 이야기였다. 그렇게 철저한 단절과 고독으로 유지되던 삶에 어느 순간 변화가 찾아온다. 느닷없이 타인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녀는 버려진 늙은 개를 데려다 키우고, 폐지 수집하는 노인의 리어카를 정리해 주며, 의뢰인의 눈에서 슬픔과 공허를 읽어낸다. 또 자신의 정체를 눈감아 준 강 박사에게 남다른 감정을 품게 되며 그들 가족의 단란한 모습을 따사롭게 응시한다. 그것은 곧 ‘소멸의 한 지점을 향해 부지런히 허물어지고 있는’ 것들에 대한 연민이다. 아울러 그 속에서 솟아나 온몸에 각인되는 살아 있음에 대한 생생한 감각이다.

김영번 기자 zeroki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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