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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퍼펑크 / 줄리언 어산지 외 지음, 박세연 옮김 / 열린책들

“모든 의사소통은 감시당하고, 영구적인 기록으로 남고, 끝까지 추적당할 것이며, 사람들은 모든 상호 관계 속에서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식별당하며 이러한 새로운 시스템의 구성원으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지난 10년 동안 벌어진 주요한 변화이며, 사실 우리는 이미 그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위키리크스의 편집장 줄리언 어산지의 말이다. 이 책은 어산지와 그의 동료 사이퍼펑크(cypherpunk)들이 한자리에 모여 인터넷이 전체주의의 가장 위험한 조력자로 변신한 과정을 폭로하며, ‘포스트모던 감시 디스토피아’의 도래를 경고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사이퍼펑크란 사회적·정치적 변화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암호기술(cryptography) 및 이와 유사한 방법을 활용하는 사람을 말한다. 암호(cypher)에 저항을 상징하는 펑크(punk)를 붙여서 만든 합성어다.

토론 참가자들의 면면은 쟁쟁하기 그지없다. 어산지를 비롯, 제이컵 아펠바움(독일 베를린 카오스 컴퓨터 클럽 및 토르 프로젝트 개발자), 앤디 뮐러마군(유럽 디지털권리 공동설립자), 제레미 지메르망(라 카드라튀르 뒤 네트 공동설립자) 등이다. 이들은 한목소리로 ‘인터넷 디스토피아’를 막기 위해 우리 모두가 함께 싸워나가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들의 엄중한 경고를 몇 대목 살펴보자.

“…결국 그들이 해외 정보부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저는 그날 저녁 뷔페 자리에서 그들에게 이렇게 물어보았습니다. ‘그런데 비밀 유지에 그토록 신경 쓰는 이유가 뭐죠?’ 그들의 대답은 이러했습니다. ‘변화를 보다 효과적으로 통제하기 위해 그 속도를 늦추는 거죠.’ (중략) 정보를 비밀로 숨긴다는 말에는 그 정보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규모를 제한하고, 그럼으로써 변화과정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앤디 뮐러마군)

“정부가 후원하고 있는 방식의 감시 활동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는 민주주의의 근간과 기능 방식을 흔들어 놓을 수 있습니다. (중략) 구글을 봅시다. 여러분이 일반적인 구글 사용자라면, 구글은 아마도 여러분이 누구와 의사소통을 하는지, 누구를 알고 있는지, 무엇을 검색하는지, 그리고 여러분의 성적 취향과 종교적·철학적 믿음까지도 알고 있을 겁니다.”(제레미 지메르망)

“…하지만 현재 상황에서 법원은 여러분이 제삼자에게 개인정보를 기꺼이 제공했을 때, 인터넷상에서 프라이버시 보호를 기대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인터넷상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제삼자에 해당합니다.”(제이컵 아펠바움)

“인구 증가에 비해 감시 기술의 증가 속도가 훨씬 빠르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가 전 세계적으로 서서히 전체주의적 감시사회로 넘어가게 될 위험에 처해 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전체주의란 완전한 감시 상태를 의미합니다.”(줄리언 어산지)

결국 이들의 말을 종합하면, 권력자들이 인터넷이란 현실에서 변화의 흐름을 통제하기 위해 갖은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뮐러마군은 “권력자들의 관점에서 인터넷을 보자면, 지난 20년은 실로 두려움의 연속이었다”면서 “이들에게 인터넷이란 자신들의 위력을 약화시키는 질병과 같은 존재”라고까지 단언한다. 권력자들은 이에 맞서 상황을 완벽하게 통제하고, 정보를 걸러내고,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기 위해 대규모 감시와 검열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엄청난 돈을 쏟아붓고 있다는 것.

물론 국가의 감시와 검열에 합법적인 측면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국가는 감시 도구들을 활용해 범죄자들을 추적하고 수사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철저하게 법률에 따라 이뤄진다면 감시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문제는 어느 누구도 그러한 기술을 통제할 방법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데 있다. 정부와 정보기관들은 대규모 감시를 정당화하기 위해 여러 핑계를 댄다. 이른바 ‘정보 계시록’(‘요한 계시록’에 빗댄 말)의 네 기사가 주요 근거다. 아동 음란물, 테러, 돈세탁, 마약과의 전쟁이 바로 그 네 기사다.

생각해 보시라. 온갖 쓰레기 같은 정보가 난무하는 인터넷상에서 범죄와 직결되는 이 같은 정보들을 차단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단순하게 말하자면, ‘나쁜 것들을 걸러내서 모든 사람들이 좋은 것만 볼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우리 사회에 더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는 말이다. 하지만 ‘누가’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가리느냐는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권력자가 이를 자의적으로 가려낸다면 그야말로 더 큰 문제를 불러올 것이다.

아동 음란물의 예를 들어보자. 이 참담한 범죄 행위에 대해 무조건 관련 사이트를 폐쇄하는 것만이 능사일까. 이에 대해 지메르망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한 가지 방법은 문제의 서버를 발견하고, 이를 폐쇄하고, 그 파일을 올린 사람들을 찾아내서 실제로 그러한 콘텐츠를 만든 사람들, 즉 최초로 아이들을 학대했던 범인을 밝혀내야 한다”면서 “또한 그러한 사람들의 네트워크, 혹은 상업적 네트워크로 쳐들어가서 이들을 검거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 같은 ‘발본색원’의 추적 없이 단순히 사이트를 폐쇄하는 것만이 해결책으로 여겨져선 안 된다는 것. 지메르망은 “수사대가 출동해 ‘그 나쁜 콘텐츠들에 대한 접근을 완전히 막아 버렸어’라고 외치면서 그러한 콘텐츠를 만든 범인들을 잡아야 할 이유를 모두 없애 버린다”며 “그건 마치 어떤 문제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는 사람의 눈을 손으로 가리는 식으로 문제를 해결한 것에 불과하다”고 강조한다.

이 같은 ‘필터링’ 방식이 불러오는 또 다른 아이러니의 한 예를 들어보자. 어산지의 말이다. “펜타곤은 위키리크스라는 단어를 포함하는 이메일을 모두 걸러내기 위한 필터링 시스템을 구축했습니다. 그리고 브래들리 매닝 사건과 관련하여 기소를 위해 군 외부의 인사들을 대상으로 ‘위키리크스’에 관한 이메일을 발송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아무런 답장을 받지 못했습니다. 모든 답장 안에는 ‘위키리크스’라는 단어가 들어 있었으니까요. 국가 보안 시스템이 제 살을 깎아먹었던 거죠.”

어산지는 “유토피아가 오직 한 가지 형태만 존재한다면 그런 유토피아는 내게 디스토피아와 다름없다”며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유토피아에서는 상호 작용의 시스템과 모델이 다양해야 한다”고 단언한다. 어산지의 이 말에는 인터넷의 바람직한 미래상이 온전히 담겨 있다. 인터넷은 한편으로 대규모 감시의 도구로 이용되어 전체주의적 디스토피아의 가장 위험한 조력자가 될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다양한 상호 작용의 시스템과 모델이 작동하는 이상적인 유토피아의 수단이 될 수도 있다. 결국 사이퍼펑크 활동가들의 모토가 이 모든 것을 요약하고 있다. ‘약자에게 프라이버시를, 강자에게 투명성을’.

김영번 기자 zero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