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여담>세월호와 병자호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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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진수/논설위원

세월호 선장과 병자호란 당시 지도자들의 얼굴이 오버랩된다. 배와 승객을 버리고 제일 먼저 도망간 선장과 아무런 방어대책이 없는 상황에서 백성들을 전지에 남겨두고 남한산성으로 피신한 국왕. 리더의 책임감을 찾아볼 수 없다는 점에서 서로 닮았다.

병자년(1636년) 12월 9일 청나라 대군이 한반도로 밀려들었다. 전쟁난 지 6일 만에 국왕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피신했다.

영의정이자 도 체찰사인 김류는 병사들에게 남한산성 북문 밖으로 나가 조선인 포로를 구하라고 명령했다. 함정일지 모른다는 장졸들의 만류를 칼로 다스렸다. 성 밖으로 나간 조선의 정예병 300명은 매복하고 있던 청군의 칼날 앞에서 유린됐고 전멸당했다. 병사들을 사지로 내몰았던 김류는 살아남았을 뿐 아니라 호란 이후인 1644년에 두 번째로 영의정 자리에 올랐다.

그는 인조반정의 원훈(元勳)이었고 특권층이었다. 병자호란 당시 김류의 아들 김경징이 강화도 검찰사로 임명됐다. 김류 집안의 가솔과 50개나 되는 재물 궤짝을 강화도로 이송하기 위해 경기도의 마부들이 거의 모두 동원됐다고 한다. 또한 김류는 호란 이후 청나라로 끌려간 자신의 첩의 딸을 구해달라고 인조에게 청탁을 넣기도 했다. 이후 조선에서 가장 먼저 최전선으로 나가 싸우고 최종 책임을 스스로 지는 실천적 리더십은 자취를 감췄다.

한명기 명지대 교수의 저서 ‘병자호란’에 따르면 호란 이후인 1638년 2월 8일, 인조는 거리에서 한 노파를 만났다.‘나라의 책임을 맡은 자들이 날마다 술 마시는 것을 일삼아 백성들을 모두 죽게 했으니 이것이 누구 탓인가? 자식 넷과 남편이 모두 죽고 다만 이 몸만 남았다. 하늘이여, 하늘이여. 어찌 이런 원통한 일이 있단 말인가.’

사과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인조는 피눈물 흘리는 노파의 오열을 듣고서야 병자호란이 끝난 지 1년1개월 만에 대국민 사과성명을 발표했다. 박근혜 대통령도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14일 만에 사과했다.

남한산성이 오는 6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될 것이 확실시된다. 세계적으로 드문 비상시의 왕궁인 데다 지형을 이용한 축성술의 시대별 층위가 결집된 초대형 포곡식(包谷式) 산성이라는 점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남한산성은 위기 상황에서 지도자가 무능하면 그 시련이 국민의 처절한 고통으로 고스란히 전가된다는 것을 상징하는 공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