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푸드>영양학자 김갑영의 우리 음식 이야기-천리장 (千里醬)

  • 문화일보
  • 입력 2014-06-11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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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을 주원료로 만든 장(醬)은 발효, 숙성, 저장되는 과정에서 미생물 작용에 의한 성분 변화로 독특한 맛을 낸다. 장은 구이, 나물, 무침, 조림 등 모든 음식에 가미돼 풍미를 더해준다.

천리장은 우리 전통 간장의 한 종류로 천리 길을 들고 가도 상하지 않을 만큼 저장성이 좋다고 해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 우리나라 최초의 음식책으로 알려진 산가요록(1450년)에 천리장은 감장(甘醬)을 햇볕에 말렸다가 곱게 가루를 내어 참깨가루와 섞어 기름종이에 싸 두었다가 국 끓일 때나 조림을 할 때 양념으로 쓰면 그 맛이 두루 미친다고 기록돼 있다. 증보산림경제(1766년)에는 천리장법이라 하여 ‘맛이 단 감장을 약한 불에서 반으로 줄어들도록 조린다. 기름기 없는 쇠고기를 삶아 얇게 썰어 햇볕에 말려서 가루를 만든다. 그것을 조린 간장에 넣고 약한 불에서 진한 죽처럼 타지 않게 주의하여 조린다’고 기록돼 있다.

우리나라에 조림음식이 등장한 정확한 연대는 나타나 있지 않으나 1800년대 말엽에 쓴 시의전서에 장조림법이 나오고 임원십육지(1835년)에 장조림으로 추정되는 육장(肉醬), 천리장이 나온다. 임원십육지에 나오는 천리장은 ‘고기를 다져서 기름과 꿀에 볶아 익히면 오래둘 수 있다’고 기록돼 있다.

쇠고기 장조림은 기름기 없는 쇠고기를 크게 토막 내어 물에 삶아 간장을 넣고 조려서 만드는데 천리장은 쇠고기를 썰어 말려서 가루를 내어 장에 조리므로 들어가는 재료는 거의 같으나 조리과정에 손이 많이 간다. 그러나 죽 같은 형태의 음식이기 때문에 치아가 불편한 환자나 노인에게 좋다.

파평 윤 씨의 35대 손이기도 한 윤왕순(62) 명인은 가문에 내려오는 천리장 제조법을 재현해 명인(제50호) 지정을 받았다. 윤 대표의 천리장 만드는 법을 살펴보자. 우선 직접 재배한 좋은 콩으로 메주를 쑤어 황토방에서 사람체온(36∼37도)의 온도로 속에 곰팡이가 눈송이처럼 하얗게 피어나도록 띄운다. 이 메주에 3∼5년 묵혀 간수가 다 빠진 신안소금물을 더해 잘 숙성시켜 단맛을 내는 맑은 감청장(甘淸醬)을 만든다. 감청장에 소의 우둔살(볼기짝살)을 삶아 말려 가루로 만든 것을 넣어 약한 불에서 오랫동안 조려 천리장을 만든다. 조려낸 천리장은 농도가 걸쭉해 숟가락으로 저어서 떠먹는다.

천리장은 원재료도 중요하지만 제조과정에서 많은 시간과 정성이 들어가 일부 사대부가 외에는 맛볼 수 없었던 귀한 별미장이어서 일반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현대인의 입맛에 맞게 잘 개발하면 ‘고급 쌈장’의 역할도 충분히 해내리라고 본다.

공주대학교 명예교수·전 한국가정과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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