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늉’만 하는 靑·政·與野…‘1000만 가족’ 고통 아는지…

육군 28사단 윤모 일병 폭행사망 사건의 책임 공방이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까지 확대되자 청와대와 여권이 사건의 본질과 초점 분산을 시도하는 모습이다. 윤 일병 사건 이후에도 충격적인 병영의 잔혹문화에 대한 증언들이 이어지고 있는데도 근본적인 대책 마련보다는 김 실장 ‘엄호’에 총력을 기울이면서, 병영문화 개혁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이번 사태에 분노하며 ‘일벌백계’를 강조했던 박근혜 대통령은 “인문학이 답”이라며 ‘공맹(孔孟)을 읊고’ 있고, 한민구 국방부 장관을 불러 책상을 치면서 호통을 치던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도 이에 호응하듯 “(육참 총장이 물러났으니) 그만하면 책임진 것”이라며 선긋기에 나섰다.

7일 정치권 안팎에서는 정부가 심도 있는 자체 회의나 당정회의 한번 개최하지 않고 곧바로 ‘민·관·군 병영문화혁신위원회’를 출범시킨 것에 대한 비판이 적지 않다. 정부 자체의 근본적인 대책이나 고민 없이 ‘급한 불을 끄고 보자’는 식의 임기응변식 처방으로 위기 모면에 급급했다는 인상을 주고 있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병영문화혁신위원회가 형식적으로 흐를 수 있으며 실효성이 없다는 우려를 강하게 제기하고 있다.

이런 모습들은 자식을 현역 사병으로 군대에 보내 놓고 있는 가족들의 불안이 극에 달하고 있는 시점에서 ‘국민의 눈높이’와도 동떨어진 청와대와 정치권의 타성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시민들은 “현역 장병들만 40만여 명이고, 앞으로 군에 가야 할 자식들이 수백만 명이라고 보면 지금 여권의 모습은 1000만 명이 넘는 그 부모와 가족들에 대해 배려감은 전혀 없는 것 처럼 보인다”라고 분통을 터트렸다.

박근혜 대통령이 6일 “가정과 학교의 인문교육 강화가 군 가혹행위와 학교 폭력을 막을 근본적인 대안”이라고 강조한 것은 틀린 말이 아니지만 ‘논점 흐리기’라는 해석이 적지 않다. 박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은 문화융성회의라는 특성을 감안하더라도 정부와 청와대가 사태의 본질에 더 천착해야 하는 시점에서 적절하지 않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는 지난 5일 국무회의에서 “모든 가해자와 방조자들을 철저하게 조사해 잘못 있는 사람들은 일벌백계로 책임을 물어 또다시 이런 사고가 일어날 여지를 완전히 뿌리 뽑기 바란다”고 말했던 것과는 기류가 달라진 모습이다. 청와대는 박 대통령의 발언 이후 7시간 만에 육군 참모총장이 사의를 표명한 것으로 책임공방을 끝내려 했지만, 윤 일병 사건 당시 국방부 장관이 김 실장이었다는 점에서 논란은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태도도 국방부 장관을 호통치던 결연한 모습과는 달라졌다. 김 대표는 6일 오전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윤 일병 사망 사건과 관련, “육군 참모총장이 책임 졌으면 다 된 것”이라며 김 실장 책임론에 선을 그었다. 그는 군내 가혹행위 원인에 대해서는 “모두 교육이 잘못돼 오는 문제”라며 “다들 군 문화만 얘기하는데 원인이 어디 있느냐, 교육이다”라고 비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정치평론가는 이날 문화일보와의 통화에서 “여권은 야권의 정치공세에 대한 방어 등 정치공학 계산에만 몰두하고 있는 등 국민 정서와도 크게 벗어나는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방승배 기자 bsb@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