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속턱 없어 車 ‘쌩쌩’… 유명무실 ‘실버존’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7일 오후 실버존으로 지정돼 있는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구립영등포노인케어센터 뒤쪽 골목길에서 차도를 걷고 있는 노인 옆으로 자동차가 지나가고 있다.

지난 5일 오후 4시쯤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구립영등포 노인케어센터 앞 4차선 도로는 노인 보행자를 위한 ‘실버존’으로 지정돼 있지만 위험천만한 상황이 계속됐다.

차들은 제한속도인 시속 30㎞를 넘겨 운행하기 일쑤였고 심지어 정지 신호에도 멈추지 않는 차량도 있었다.

역시 같은 실버존으로 지정돼 있는 건물 뒤 일방통행 골목길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불법 주·정차된 차량과 주행 중인 차 사이로 노인들이 무단횡단하는 경우도 많았다. 이날 노인케어센터 앞 4차선 도로를 지난 운전자 최모(34) 씨는 “제한속도 표시도 없고 그 흔한 과속방지턱조차 없다”며 “인도에 달랑 하나 세워져 있는 실버존 표지판을 뒤늦게 발견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바닥에 ‘노인보호’라는 노면 표지가 있었지만, 최 씨는 미처 알아채지 못했다.

공원·노인복지시설 등 노인 통행이 많은 곳에 설치된 실버존(노인보호구역)이 사실상 유명무실한 상태다. 실버존은 스쿨존(어린이보호구역)과 마찬가지로 노인의 안전한 통행을 보장하기 위해 지난 2006년 도입된 교통안전구역이지만, 제대로 운영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7일 경찰과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경찰이 노인 통행인구를 감안해 실버존 설치가 필요하다고 꼽은 지역은 전국 7157곳이지만, 실제 현재 지정·운영되는 실버존은 626개에 불과하다. 특히 실버존에서 사고를 내도 스쿨존처럼 가중처벌되지 않고 있어 처벌 강화 등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스쿨존에서 주·정차, 과속 등 교통 법규를 위반하면 벌금과 벌점 모두 최대 2배 가중처벌되지만, 실버존은 이 같은 조항이 없어 사고 억제 효과가 크다고 보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시설 개선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영등포구청 관계자는 “설치 비용은 전액 시에서 지원하지만 관리는 구에서 해야 한다”며 “일반적으로 도로 사정과 지자체 재정 상황에 따라 실버존 표지판 수와 과속방지턱 유무는 차이가 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노인 보행자(65세 이상) 사망자 수는 지난 2008년 903명에서 지난해 951명으로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글·사진 = 이근평 기자 istandby4u@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