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왝더독’ 야당, 죽어야 산다(Ⅲ)

이용식/논설실장

말에는 인격과 생각이 녹아 있다. 어느 세월호 유가족이 ‘단식 38일째’(8월 20일) 청와대 부근에서 했다는 욕설은 눈과 귀를 더럽힐 것 같아 옮기고 싶지 않지만 독자들의 판단을 위해 일부 소개한다. “이런 개XX들이 웃고 그러니까 대통령이라는 X이 똑같은 거야, 아주 씨XX이지.” 함께 있던 다른 사람은 “뭘 똑바로 쳐다봐 XX년아” “XX을 빼버릴까”라고도 했다. 박근혜 대통령 면담 신청을 위해 청와대로 향하다 저지당했음을 고려하더라도 인간 됨됨이, 대통령과 공권력에 대한 인식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4·16 세월호 참사 다음날 진도체육관을 찾은 박 대통령 앞에서 그가 “XX 내가 다 받아버릴까” 등의 욕설을 퍼부었을 때, 사람들은 자식 잃은 사람의 절규로 이해하고 넘어갔다. 최근 인터뷰에서 “내 고집이 센지, 박근혜 고집이 센지” 운운했을 때 갸우뚱하기 시작했다. 다른 유가족 대표는 여당과의 협상을 ‘적과의 동침’ ‘전쟁’이라고 했다. 이런 사람들이 야권을 좌지우지하기에 이른 것은 기막힌 일이다. 문재인 의원 등 많은 인사가 동조 단식에 나섰고, 그가 중단하자 중단했다. 다수 국민의 지지로 선출된 대통령을 국가 정상으로도, 심지어 인격체로도 보지 않으려는 사람들에게 원내 의석 130석의 제1 야당이 질질 끌려가고 있다. 국회선진화법에 따른 ‘야당 거부권’을 고려하면 국회의 발목까지 잡고 있다. 꼬리가 몸통을 뒤흔드는 ‘왝더독(wag the dog)’이라는 심각한 비정상의 늪에 야당은 물론, 나라 전체가 빠져 있는 형국이다.

누구나 실패를 한다. 그러나 실패에서 배우지 못하면 성공할 수 없다. 새정치연합은 여러 번의 실패에도 배우지 못하고 있다. 2012년 4월 총선 당시 야당 압승이 예상됐고, 여당은 개헌 저지선 확보가 목표라고 했을 정도였다. 기고만장한 야당은 ‘나꼼수’와 통합진보당 등 저질·종북세력과 손잡았고, 완패했다. 8개월 뒤 대선에서 또 졌다. 비대위를 만들고 뼈를 깎는 각오로 적폐를 청산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당 개혁은 고사하고 ‘권은희 공천’등 거꾸로 가는 바람에 7·30 재·보선에서 참패했다. 또 비대위에다 ‘탈(脫)투쟁정당’을 외쳤다. 그러나 실제로는 장외투쟁에다 ‘막말 인사’까지 떠받들고 있다.

10년 집권 경험을 가진 정당이 ‘양치기 야당’ ‘양아치 정파(政派)’ 이미지까지 주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다행히 소속 의원 15명의 장외투쟁 반대 서명이 나왔다. 야당에서는 보기 드문 거사(擧事)다. 이들 중 황주홍 의원은 “국가 개조보다 우리 당 개조가 더 힘들어 보인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그렇지만 해내야 한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복지 천국을 내걸었다가 만년 야당으로 전락했던 영국 노동당의 재집권 역사는 선명한 교훈을 주고 있다. 1990년대까지 노조 세력에 의한 왝더독이 심각했고, 18년을 야당으로 지냈다. 어느 날 토니 블레어 등 일단의 개혁세력이 나와 ‘제3의 길’을 내걸고 근본부터 바꾸기 시작했다. 당의 상징인 ‘붉은 깃발’을 내리고, 당의 영혼이라던 당헌 4조(공동 소유)를 폐기했다. 성장과 투자, 생산적 복지, 치안 강화 등 보수당의 전유물을 빼았아왔다.

노동당 장기 집권의 길을 연 블레어 역시 “나라를 바꾸는 것보다 당을 바꾸는 것이 더 힘들다”는 말을 남겼듯이, 새정치연합이 실패한 노선·세력을 청산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패배의 1차 책임자인 문재인·안철수 의원부터 정계 은퇴, 최소한 의원직 사퇴라도 해야 제대로 된 개혁을 시작할 수 있겠지만 언감생심(焉敢生心)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대선 패배 뒤 깨끗이 정계를 떠났다가 다시 국민의 부름을 받았지만 지금 야당 흐름은 정반대다.

이런 현실 때문에 승산이 없다면 솔로몬 재판에 나오는 진짜 어머니처럼, 야당을 진짜 사랑하는 사람들이 떠날 각오라도 해야 한다. 성격은 다르지만 1987년 양김의 신한민주당 탈당, 2003년 열린우리당 창당 등 두 차례 성공 사례도 있다. 서명 의원들이 중심이 되고, 친노세력에 쫓겨났던 온건파 인사들, 광범위한 중도 세력이 합류할 수 있다면 해볼 만하다. 그러나 다음 선거가 너무 멀다는 것이 치명적이다. 당분간 야당은 ‘무조건 박근혜정권은 싫다’는 소수의 지지에 기대며 지리멸렬할 가능성이 짙다. 더 처절하게 망가져야 살길을 찾을 것 같다. 불행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