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 살해·방화… ‘우울증 주부 범죄’ 위험수위

지난 18일 광주에서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던 주부 구모(38) 씨는 두 살 된 딸의 코와 입을 막아 살해했다. 큰아들을 낳은 5년 전부터 산후 우울증에 시달려왔고, 남편과 관계가 좋지 못한 스트레스 탓에 증상을 키워온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10월부터 최근까지 6번에 걸쳐 서울 강남구 일원동 대모산에서 나무 250그루를 태우다 경찰에 붙잡힌 정모(여·53) 씨는 “가정에서 고립감을 느껴 우울증을 앓았다”며 “불을 지르면 기분이 좋아졌다”고 털어놨다.

최근 우울증에 걸린 ‘위기의 주부’들의 강력 범죄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특히 30대 이상 여성 우울증 환자가 5년 새 20% 이상 증가해 40만 명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나 대책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21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30대 이상 여성 우울증 환자는 지난 2009년 36만2463명에서 해마다 늘어 2013년 44만1076명으로 5년 사이 21.7%가 증가했다. 이는 2013년 18만8460명인 같은 연령대의 남성 우울증 환자에 비해 무려 25만여 명이나 더 많은 것이다. 연령대로 따지면 20대 여성 우울증 환자는 5년 동안 3만4718명에서 3만4068명으로 소폭 줄었지만, 다른 연령대는 증가추세를 보였다. 특히 70대 이상 여성 우울증 환자는 2009년 7만6191명에서 2013년 11만4284명으로 50%가 늘었고, 50대의 경우 같은 기간 8만1583명에서 10만4656명으로 28.3%가 증가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현상이 가족 구성원들의 관계가 파편화하는 상황에서 주부들이 과거와 달리 가정에서 제대로 된 안식을 찾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현택수 한국사회문제연구원 원장은 “사회적인 여건이 치열해질수록 가족 구성원들은 가정 밖에서 큰 스트레스를 얻게 되고 이것이 다시 가정 내로 전이된다”며 “전통적인 역할기대에 따라 주부들이 가족 구성원들의 과도한 스트레스를 모두 떠맡으려 하면서 벌어지는 현상”이라고 진단했다.

강용 한국우울증연구소 소장은 “우울증이 적절히 해소되지 못하면 극단적인 행동으로 표출되기 쉽다”며 “가족의 삶 못지 않게 개인 인생의 의미를 스스로 찾는 등 중년에 들어서기 전 주부들의 자아 성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근평 기자 istandby4u@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