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밈노믹스 그룹의 설립자인 저자 사이드 돌라바니는 가치시스템의 변화를 통해 경제 흐름을 분석한다. ‘생존 본능’부터 ‘글로벌 질서’까지 8단계의 진화 과정을 거치면서 경제는 지속 가능한 형태로 나아간다. ‘첫 번째 층’이 생존을 위한 단계라면, ‘두 번째 층’은 존재를 위한 것이다. 각각의 색은 저자가 쉬운 설명을 위해 임의로 정했다. 엘도라도 제공
밈노믹스 / 사이드 돌라바니 지음, 박세연 옮김 / 엘도라도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가 전 세계를 휩쓸면서 자본주의의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기존의 주류 경제학은 경제 주체들이 현명한 이기심을 바탕으로 합리적 판단과 선택을 한다고 규정했지만, 위기의 순간에 이 메커니즘은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경제 파탄에 책임이 있는 관계자나 관련 학자들은 자신들의 논리로 현상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앨런 그린스펀 전 미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은 결국 그해 10월 23일 의회 청문회로 불려 나왔다. 40여 년간 실질적으로 미국 경제를 이끌면서 자유방임 자본주의의 리더로 여겨진 그에게 책임을 묻는 자리였다.
그린스펀을 끊임없이 추궁하던 헨리 왝스먼 하원의원이 그에게 일갈했다. “당신의 세계관, 즉 당신의 이데올로기가 틀렸고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는 말씀이로군요.” 그러자 그린스펀이 자포자기하듯 답했다. “맞습니다. 그런 뜻입니다. 그래서 충격을 받았습니다. 너무나도 잘 돌아갔던 풍성한 증거를 바탕으로 40년 넘게 일을 해왔으니까요.” ‘금융 마에스트로’라고 불렸던 그와 그가 이룩한 경제체제가 한계에 봉착했음을 시사하는 순간이었다. 당시 인간이 왜 이성적·합리적으로 행동을 하지 못하는가에 초점을 맞춘 행동경제학이 고전 경제학의 대안으로 인기를 끌기도 했다.
신간 ‘밈노믹스’는 행동경제학을 넘어, 모든 경제 현상과 원리를 해석할 수 있는 새로운 프레임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기존의 경제학으로는 자본주의의 위기를 결코 설명할 수도, 해결할 수도 없다는 지적이다. 저자가 제시하는 핵심 개념은 밈(MEME)이다. 영국의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가 처음 사용한 이 용어는 생물학적 유전자인 진(gene)처럼 “자기복제가 가능하고 인간의 마음을 숙주로 활용하는 문화 정보의 단위”를 뜻한다. 음악·철학·종교·건축·문학·경제·언어 등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전이되는 사회적·문화적·심리적 DNA 같은 개념이다. 이들은 사회시스템들을 잇는 일종의 연결고리로 작용하며 개인과 문화를 정의하는 가치 시스템인 V밈(Value-system MEME)을 형성한다.
책은 개인과 조직, 문화 전반의 사고방식이 V밈에 따라 결정된다고 설명한다. 또 생물·심리·사회적 상황이 변화함에 따라 새 가치 시스템이 출현한다. 경제 또한 이 흐름을 통해 진화를 거듭한다. 저자는 이를 심리학자 클레어 그레이브스의 ‘인간 존재의 단계 이론’과 돈 벡·크리스토퍼 코원의 ‘나선형 역동성 이론’ 개념을 빌려와 논한다. 경제는 생물·심리·사회적 변화와 가치 시스템 변화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나선형 곡선을 따라 생존 본능-부족 질서-강력한 자아-절대적 질서-진취적 자아-평등주의 질서-전체적 자아-글로벌 질서 등 8단계의 진화 과정을 거친다는 것이다. 경제학을 ‘시장’이 아닌 ‘가치’의 진화 관점으로 파악해 비록 복잡하지만, 많은 경제 현상들을 설명해낸다.
5단계 ‘진취적 자아’는 산업화 시대의 가치 시스템을 의미한다. 인간은 스스로 진보를 설계하고, 영향력을 행사하며, 체제를 강화할 수 있다고 믿는다. 기술과 혁신, 경쟁과 전략이 부를 가져다줄 것이란 장밋빛 전망이다. 이 과정에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착취’ 또한 합리화된다. 하지만 성장이 둔화되면서 삶의 실존적 차원의 질문이 커지고 내리막을 걷는다. “이 모든 게 정말로 우리의 삶을 위한 것인가”란 질문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리하게 된다.
현재 미국 경제는 6단계 ‘평등주의 질서’에 있다. 이는 내적 평화와 인간적 관계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등장한다. ‘모든 이들의 행복’이 최고의 가치로 떠오르고, 평등주의와 인도주의가 핵심 개념으로 자리한다. 저자는 금융위기가 평등주의의 부정적인 모습이 드러난 현상이라고 주장한다. 경제적 능력에 상관없이 모든 이들이 주택을 구입하도록 부추겨 서브프라임 위기가 발생했고, 모두를 만족시키기 위한 합의적인 의사결정에 과도한 에너지가 낭비됐다는 설명이다.
책은 직관적 지성과 기능이 중시되는 ‘전체적 자아’ 단계로 연착륙하기 위한 기업·금융·제조업 등의 미래 설계 방향도 제시한다.
유민환 기자 yoogiz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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