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에 ‘발 묶인 돈’ 800조 육박… ‘유동성 함정’ 빠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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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MF 등 단기자금 791조
통계 작성 이래 최대 금액
기업자금조차 금융권 몰려

예금 회전율도 3.7회로↓
시중 돈 유통속도 느려져

경기 침체가 지속되면서 투자처를 찾지 못한 단기부동자금이 800조 원에 육박하며 역대 최고치까지 증가했다. 예금회전율이 떨어지고 금융시장에 쌓이는 돈이 늘어나면서 실물시장에는 돈이 돌지 않고 있다.

정부의 경기 부양책과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에도 이러한 돈맥 경화 현상이 심화되면서 자칫 한국 경제가 ‘유동성 함정’에 빠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16일 한은에 따르면 투자처를 정하지 못해 금융시장에 쌓인 단기부동자금은 지난해 11월 말 현재 전월 대비 14조 6506억 원 증가한 791조 3768억 원으로 조사됐다. 이러한 단기부동자금 액수는 관련 통계가 나온 이래 가장 많은 것이다. 단기부동자금은 현금과 요구불예금, 수시입출식 저축성예금, 머니마켓펀드(MMF), 양도성예금증서(CD), 종합자산관리계좌(CMA), 환매조건부채권(RP), 6개월 미만 정기예금, 증권사 투자자예탁금 등 금융사에 단기로 맡겨진 자금을 합한 것이다.

700조 원대 초반에서 횡보하던 단기부동자금은 기준금리가 인하된 지난해 8월부터 급격히 늘어나는 추세다. 단기부동자금은 지난해 8월에 전월 대비 18조 2127억 원이나 급증, 750조 원을 넘어선 뒤 빠르게 늘어나면서 11월에는 800조 원에 육박하는 수준까지 올랐다.

단기부동자금이 늘어나는 것과 반비례해 예금회전율은 하락했다. 지난해 11월 은행의 예금회전율은 월 3.7회로 전월(3.9회)보다 하락했다. 예금회전율은 기업이나 가계가 투자나 소비 등을 위해 예금을 인출한 횟수로, 이 수치가 낮다는 것은 돈의 시중 유통속도가 그만큼 느리다는 의미다. 예금회전율은 2013년 12월에 4.1회였으나 올해 들어서는 3회 수준에서 맴돌고 있다.

기업이나 가계가 자금을 잠시 예치해두는 수단인 당좌예금과 보통예금 등 요구불예금의 회전율은 11월에 월 25.7회를 기록했다. 요구불예금 회전율은 2010년 평균 34.8회를 정점으로 2011년 34.2회, 2012년 32.7회, 2013년 28.9회 등 해마다 하락하고 있다. 올해는 11월까지 평균 26.3회에 머문 상태다.

이처럼 돈이 금융시장에 고여있으면서 유동성 함정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유동성 함정이란 돈을 풀어도 기업이나 가계 등 경제주체들이 돈을 움켜쥐고 사용하지 않아 경기가 살아나지 않는 현상을 뜻한다.

기업 자금도 금융시장으로 몰리는 모양새다. 지난해 11월 말 현재 은행 예금은 전월대비 13조 950억 원 늘어났다. 특히 이러한 증가분 중 기업이 70.1%(9조 1753억 원)를 차지해 기업 투자 경색마저 걱정되는 상황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 조사에 따르면 올해 설비투자를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으로 하거나 줄이겠다고 답한 최고경영자 비율은 76.4%였다.

김석 기자 suk@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