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최경환 경제부총리는 역시 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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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학용 / 논설위원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별명이 하나 붙었다. ‘최꺽정’. 최근 들어 “걱정된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기 때문이다. 지난 주말 열린 경제장관회의에서도 “청년실업률이 높아 매우 걱정이 크다”고 말했다. 한 정책포럼에선 “한국 경제가 디플레이션에 빠졌다고 할 순 없지만, 일각의 우려로 걱정이 크다”고도 했다.

최근의 경제지표들을 보면 최 부총리의 근심이 엄살이 아님을 알 수 있다. 1월 중 생산과 소비, 투자, 수출입 등이 일제히 마이너스로 추락했다. 2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5년 7개월 만에 최저치로, 디플레이션이 우려되는 단계다. ‘청년실업률 11.1%’도 구조조정의 광풍이 몰아친 환란 때 수준이다.

최 부총리가 9개월간 걸어온 ‘지도에도 없는 길’의 흔적들을 되돌아보자. 그의 정책은 ‘들쑥날쑥’하다. 경제 주체들은 왕왕 헷갈린다. 박근혜 대통령은 틈만 나면 일자리를 강조한다. 그런데 그는 난데없이 ‘소득주도 성장론’을 들고 나왔다. 대기업에 최저임금을 올려달라고 닦달했다. 무리한 임금 인상은 기업 경쟁력을 주저앉혀 일자리 창출에 역행한다. 정책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해서 인과관계가 확증되지 않은 정책들을 불쑥 내던져선 안 된다. 일관된 정책으로 시장에 신뢰를 주고, 그 효과가 날 때까지 인내해야 차선도 최선의 정책이 된다.

정책 목표도 갈팡질팡한다. 박 정부는 언제부턴가 ‘경제 민주화’를 접고 ‘경제 활성화’를 국정의 최우선 과제로 내세웠다. 올초엔 그 중심을 4대 부문 구조개혁으로 슬그머니 옮겼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여전히 국정 운영의 최우선은 경제 활성화라고 말한다. 통상 경제 활성화는 단기적 경기부양을, 구조개혁은 중·장기적 성장 잠재력 제고를 의미한다. 사실상 상치되는 정책들을 경제 활성화라는 용어로 한데 묶어 혼용하는 셈이다. 얼마 전엔 뜬금없이 ‘한국판 뉴딜정책’ 운운하며 민간투자 확대를 주문하더니, 곧바로 대대적인 사정(司正) 방침을 발표했다. 국정 목표가 우왕좌왕하니 정책의 실효성도 기대 난망이다.

정치인이어서인지 ‘알랑알랑’ 포퓰리즘 정책도 자주 내놓는다. 단적인 예가 주택담보인정비율(LTV)·총부채상환비율(DTI) 완화를 통한 부동산 띄우기다. 이는 경제인 최경환 속에 있는 ‘정치인 아바타’의 대표작이다. 주택 시장은 회복세를 보이지만 실물 경기가 살아나지 않으면 모래성이다. 가계부채는 시한 폭탄이다. 증가 속도가 가팔라지면서 불안감도 높아지고 있다.

정책도 ‘이것저것’ 남발한다. 그는 “강력한 한 방이 필요하다”며 온갖 정책을 쏟아냈다. 그러나 대부분은 ‘중고품’이거나 그 규모도 그저 그 정도 수준이다. 취임 직후부터 ‘46조 원+α’ 정책 패키지, 투자 활성화 대책, 가계소득증대세제 3대 패키지 등을 내놓으며 요란을 떨더니 지난주엔 ‘제2의 중동 붐’을 조성한다며 5조 원의 정책금융 지원을 발표한 지 하루 만에 10조 원의 부양책을 또 꺼냈다. 정책의 큰 그림이 있는지 의구심이 들 정도다. 경제 주체들은 정책에 무덤덤해지고 심리도 자극될 리 만무하다. 규제혁파를 외쳐왔건만 지난 1년간 규제건수는 3.1% 줄어드는 데 그쳤다.

최 부총리는 내년 4월 총선에 출마할 의사를 분명히했다. 경제수장으로 일할 수 있는 기간은 10개월 안팎이다. 경제인 최경환의 영예로운 퇴진을 위해 한 가지만 제언한다.

정책의 선택과 집중이 절실하다. 우리 사회에서 국민이 원하는 화급한 과제는 일자리다. 그 보고(寶庫)는 서비스산업이다. 의료·관광 등 서비스업 규제만 풀어도 향후 5년간 청년 일자리 35만 개가 생긴다. 서비스업 활성화에 온몸을 던져야 한다. 매일같이 야당에 애걸복걸해서라도 오는 4월 임시국회에선 의료 부문을 포함한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을 반드시 통과시켜야 한다. 새정치민주연합이 ‘경제정당’을 표방하고 나선 이번이 적기다. 정치권도 이제 ‘7포(연애·결혼·출산·내 집·인간관계·희망·꿈 포기) 세대’를 두려워해야 한다. 내년 총선의 승패는 100만 청년 실업자들의 일자리에 달려 있다.

순자에 이런 말이 나온다. ‘계이사지 후목부절 계이불사 금석가루(而舍之朽木不折而不舍金石可鏤·자르다 그만두면 썩은 나무도 자를 수 없지만 끊임없이 새기면 쇠와 돌에도 새길 수 있다)’. 그가 남은 재임기간 내내 가슴에 새겨둬야 할 계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