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PGA 한국 낭자들 좌충우돌 ‘영어 정복기’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유소연(왼쪽)이 지난 2013년 롤렉스 LPGA 시상식에서 리포터로 변신한 동료 선수 산드라 갈의 질문에 영어로 인터뷰를 하고 있다. LPGA홈페이지 캡처

올 시즌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첫 멀티(2승) 우승을 차지한 김세영(22). 그는 19일 끝난 롯데챔피언십 연장 첫 홀에서 기적 같은 이글로 우승을 확정한 뒤 TV 카메라 앞에서 영어 인터뷰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김세영은 시상식 후 공식 인터뷰에서는 정확한 의사 전달이 필요할 것 같아 통역을 동반했다. ‘슈퍼 루키’ 김효주(20) 역시 파운더스컵 우승 때 시상식에서 “아직 영어가 서툴러 한국말로 인사를 하겠다”고 말했다.

올해 LPGA투어에 진출한 한국 선수들은 재외교포까지 포함하면 40여 명이 넘는다. 이들 중 상당수는 ‘나홀로 영어’가 가능하지만 일부는 영어 구사가 서툴다. 대부분 신인 선수들이 여기에 해당된다. 투어 경력 2~3년은 돼야 통역없이 능숙하게 영어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미처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LPGA투어에 덜컥 진출하면 어려움을 겪기 마련이다.

1998년 박세리(38)의 성공 이후 한국 선수들은 앞다퉈 미국으로 진출했지만 당시만 해도 언어 문제는 소홀히 했다.

2010년 이전엔 통역을 동반한 한국 선수가 10여 명이나 됐고 2008년 LPGA투어는 한국인을 겨냥해 외국 선수가 영어를 구사하지 못하면 투어 자격을 박탈하는 정책을 들고 나와 파문을 일으켰다.

한국 선수들의 ‘영어정복기’는 개성만큼이나 천태만상. 맏언니 박세리는 삼성의 후원으로 1997년 여름 미국으로 건너가 ‘리드베터아카데미’에서 영어를 본격적으로 접했다. 여기에서 한때 ‘남친’이 된 홍콩 출신 프로지망생(로렌스 첸)과 처음 만나 대화를 하면서 자연스레 영어를 배우게 됐다는 후문이다. 그는 후배들에게 틈만 나면 “영어를 잘해야 미국 문화에 잘 적응하며 좋은 성적도 낼 수 있다”고 말하며 영어학습을 독려해 왔다.

2008년 미국에 진출한 최나연(28)은 햄버거를 주문할 때 손가락으로 음식을 가리킬 때가 많았고, 한동안 통역이나 지인과 함께 다녀야 했다고 고백했다. 그는 캐다나 출신의 영어강사를 고용해 매일 1시간씩 1년간 영어를 배웠다.

박인비(27)의 영어 실력은 미국 언론조차 극찬할 정도다.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12세 때부터 미국에서 지내 영어를 완벽하게 구사한다. 박인비는 지난해 4월 ‘올해의 선수상’ 수상식에서 유창한 영어 연설을 하기도 했다. 2011년 US여자오픈 챔피언에 올랐을 때 유소연(25)은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영어로 능숙하게 소감을 밝혀 주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유소연은 어렸을 때부터 영어공부를 해왔고, 미국 진출 결심을 굳힌 2010년 말부터 미국 드라마를 보는 등 1주일에 2차례씩 3시간 정도를 영어공부에 투자했다.

서희경(29)은 10대 때 미국 친척 집에 오래 머무르면서 영어와 친숙하게 됐다.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는 LPGA투어 ‘영어 파동’을 겪은 뒤 지난 2009년부터 국내 여자 프로의 영어능력 향상을 위해 파고다어학원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협회 소속 2000여 명의 선수들이 무료로 영어를 배울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해 오고 있다.

협회는 또 2000여만 원의 별도 예산을 투입해 ‘잠재적인 해외진출 선수’들을 대상으로 매일 원어민과 전화로 통화하면서 영어를 익힐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협회는 세계화의 일환으로 올해부터 국내 프로 선수들이 일본어와 중국어 강좌를 수강할 수 있게 했다.

최명식 기자 mscho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