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톡>이민자, 시대 아픔·비극적 사랑… ‘조각난’ 아메리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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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이민사를 배경에 깐 영화 ‘이민자’는 시대의 아픔을 고스란히 안고, 살아남기 위해 사랑마저도 이용해야 했던 세 남녀의 운명을 담담한 톤으로 그려냈다. ‘사랑’이 영화의 주제지만 등장인물들의 고단한 삶 속에 묻혀 그리 부각되지 않는다. 다만 그들의 눈빛, 스치듯 지나가는 표정을 통해 서로에 대한 간절한 마음을 읽을 수 있다.

1차 세계대전으로 부모를 잃고,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여동생과 함께 미국 뉴욕 엘리스섬에 도착한 폴란드인 에바(마리옹 코티아르)는 폐결핵을 앓고 있는 동생이 치료소에 격리된 후 자신마저 입국이 거절되자 난감해 한다. 하지만 우연히 만난 댄스홀 매니저 브루노(호아킨 피닉스)의 도움으로 뉴욕에 온 에바는 동생을 데려오기 위해 불법 이민자 여성들을 이용해 돈을 버는 브루노 밑에서 일을 하기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 날 에바는 브루노의 사촌인 마술사 올란도(제러미 레너)와 운명처럼 마주치고, 올란도는 에바에게 동생을 구해내 자신과 함께 떠나자고 제안한다.

이 영화의 가장 큰 힘은 세 배우의 깊은 연기다. 마리옹 코티아르는 하루하루 고달프게 살아가면서도 동생을 데려오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하는 에바의 고통을 흔들리는 눈빛으로 절절하게 표현해냈다. 그러면서도 본능적으로 사랑에 반응하는 여성의 심리를 애틋하게 보여준다. 또 호아킨 피닉스도 사랑에 서툴지만 자신의 여자를 지켜내기 위해 안간힘 쓰는 브루노의 불안정한 심리를 거친 연기로 소화해내며 관객의 공감을 이끌어낸다.

여기에 제러미 레너의 능란한 연기가 더해져 비극으로 치닫는 세 남녀의 사랑이 애절하게 그려졌다. 1921년 뉴욕 거리와 뉴요커들의 생활상을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이 영화에는 당시 유행했던 여성들의 의상과 헤어스타일, 메이크업 등이 그대로 재연됐다. 또 재즈와 클래식 등 음악을 통해 등장인물들의 심리를 극적으로 묘사했다.

지난 1994년 ‘비열한 거리’로 제51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은사자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데뷔한 제임스 그레이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3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김구철 기자 kckim@munhwa.com